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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不知)의 진리(眞理)

한실25시 2024. 2. 19. 21:27

🍒부지(不知)의 진리(眞理)🍒

🍇달걀(鷄卵)이 상(床)에
🌴자주 오르지 못할 정도(程度)로
🍇귀(貴)한 시절(時節) 이었습니다.


🌴어느 마님은 생란을
🍇밥에 비벼먹는 것을 좋아 🌴했습니다.

🍇​어느 날
🌴몸종이 밥상 을 들고 오다
🍇그만 달걀이 마루에 떨어져
🌴깨져 버렸습니다.

🍇그 광경(光景)을
🌴문틈으로 본 마님은
🍇달걀을 어찌 하는지
🌴몰래 지켜보았는데,

🍇​몸종은 마룻바닥에 깨진 달걀을
🌴접시에 담아 상(床)을 내왔습니다.

🍇괘씸한 생각에 마님은
🌴몸종에게 물었습니다.

🍇''깨끗하다는 것이
🌴무얼 말하는 것이냐?"

🍇먼지나 잡티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면
🍇혼내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몸종은
🍇이렇게 대답(對答) 했습니다.

🌴''안보이면 깨끗한 것입니다."

🍇​마님은 그 말에 크게 🌴공감(共感)하며

"네 말이 옳다." 하고는
용서(容恕)했습니다.

​때로는 모르면
행복(幸福)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과거(過去)를 캐내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는 호기심(好奇心)에
알려고 하고,
알고 난 뒤에는 대부분(大部分)
후회(後悔)하게 됩니다.

​사람은 완전무결(完全無缺)할 수가
없기 때문 입니다.

​'아는 것이 병(病)이다’ 라는 말은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상황(狀況)을 가리키는 말로,

人生의 많은 상황(狀況)이 그렇습니다.

​‘모르는 게 약(藥)이다’ 라는 말은
어설픈 지식 습득(知識習得)의
위험성(危險性)을 경고(警告)하는
메시지(message)를 담고 있습니다.


​즉 어설프게 알 바에야
차라리 모르는 것이 더 나은 것으로,

‘책(冊)을 읽지 말라’ 는
성철 스님의 말씀은
독서(讀書)의 무용성(無用性)을
주장(主張)한 것이 아니라
어설픈 독서(讀書)의 위험(危險)을
경고(警告)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돈(money)은
만악(萬惡)의 근원(根源)이다’ 에서

악(惡)의 근원(根源)은
돈(money) 그 자체(自體)가 아니라
돈(money)에 대한 집착(執着)에서
횡행(橫行)하는 온갖 나쁜 짓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후회(後悔) 할 일이
분명(分明)하다면
우리는 굳이 알려고 할
필요(必要)가 없습니다.

안 보이거나 모르면
깨끗한 것이 됩니다.

​삼국지(三國志)에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거리가 생긴다는 뜻이며,

소동파(蘇東坡)의 시(詩)에도
‘人生은 글자를 알 때부터
우환(憂患)이 시작(始作)된다! 는
말도 있습니다.

예(例)를 들어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
행복(幸福)할까요?

손바닥에 수많은 균(菌)이 있다는 것을
늘 인식(認識)하고 산다면 어떨까요?

내가 먹는
음식(飮食)의 성분(成分)들이나
위해성(危害性)을 안다면
더 행복(幸福)할까요?

​물건(物件)에서 균(菌)이 옮을까봐
다른 사람이 쓰던 물건(物件)을
만지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게 섣불리 알아서 생긴
병(病)입니다.

흔히 예전에는 이런 경우(境遇)를
신경쇠약(神經衰弱)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한강(漢江)에 수없이
나룻배가 다녀도
흔적(痕跡)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가깝고 친(親)하다고
노출(露出)시키거나
추궁(追窮)하지 마십시오.

아는 순간(瞬間)
정(情)과 행복(幸福)은 사라지고,
사이는 멀어지고 맙니다.

​상대방(相對方)이 들어서
안좋은 이야기는
무덤까지 가져가야 하는 것,
이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眞理)입니다.

🎋당신의 '眞理'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