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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욕을 버리고 만족할 줄 알라

한실25시 2024. 6. 18. 21:28

과욕을 버리고 만족할 줄 알라

  톨스토이의 우화에 한 가난한 농부 얘기가 있다.

  이 농부는 평소 귀족들처럼 넓은 땅을 갖고 싶은 욕망에 넘쳤는데 어느 날 한 귀족으로부터 제의를 받는다.
여보게 파콤, 내가 그 소원을 풀어주지. 자네 마음대로 하루 동안 달리면 그 만큼의 땅을 자네에게 주겠네

  다음 날,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신이 나서 죽기 살기로 넓은 들판을 달렸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그게 자기 땅이라니. 마침내 그는 엄청난 거리를 달린 뒤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숨을 헐떡이며 되돌아오자 곧 지쳐 쓰러져 죽고 만다. 결국 하루 종일 자기의 땅을 위해 달렸지만 그에게 필요했던 땅은 스스로 묻혀야 할 2평의 땅 뿐이었다.

  욕심이 일을 그르치고 화를 부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한 사막에 조그만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노인이 있었다. 그곳은 맑은 샘물과 우거진 야자수가 있는 명당이었다. 노인은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샘물을 퍼주며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그네들은 물을 얻어먹고 노인에게 몇 푼의 동전을 건넸다. 노인은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금고에 동전이 쌓여가면서 욕심이 생겼다. 노인은 돈을 모으는 것에 몰입했다. 그리고 샘물을 철저하게 관리하기 시작하여 한 잔에 일정 금액을 받았다.

  어느 날, 노인은 샘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알았다
. 그는 잎이 무성한 야자수가 샘물을 빨아들인다고 생각하고 야자수를 몽땅 잘랐다. 결국 샘물은 말라버렸다. 야자수가 만들어 낸 그늘도 없어졌다. 그 뒤 아무도 노인의 오두막집을 찾지 않았다. 노인은 뜨거운 햇볕을 견디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끝이 없는 게 인간의 욕심이라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지나친 욕심은 자신뿐 아니라 이웃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 어느 땐 희망이니 꿈조차도 욕심의 불쏘시개가 될 때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누구라도 욕심 없는 삶을 지탱하기란 불가능하다. 문제는 늘 분수를 넘은 과욕이며 인본을 벗어난 욕심에 있었다. 남이야 어찌되든 설사 남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더라도 나만 득이면 된다는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에 몰입하고 집착한 결과로 빚어진 숱한 사건 사고들을 지금껏 얼마나 보아왔던가. 우리사회에 깊숙이 뿌리 내린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이다.


  괴테는 진정한 행복은 절제에서 솟아난다고 했다. 이때 절제는 억제가 아니라 선량한 양심의 자유요, 축복의 관문인 것이다.

  사람의 욕심은 원래 멈출 줄을 모른다. 그래서 사람이다. 욕심에는 두 가지 있다. 욕구와 욕망이다. 뭐 둘 다 똑같은 말이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나는 구분한다. 욕구는 채워지면 사라지는 것이다. 즉 배고플 때 밥을 배불리 먹으면 배고픔은 사라진다. 욕망은 채우면 채울수록 커지는 것이다.

  1억을 갖게 되면 10억을, 10억을 얻게 되면 100억을 갖고 싶은 것이 욕망의 성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멈출 수 없는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스트레스 받는다. 과한 욕심도 인간의 당연한 모습이니 큰 잘못은 아니나, 욕망에 휘둘리면 불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