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전장례식

생전 장례식-수필

한실25시 2022. 2. 28. 20:08

생전 장례식-수필

                                     이병희(문협 수필 분과)

 

  ‘그래, 바로 이거야.’

  이번 출간 기념회의 밑그림을 내 머릿속에 그려본다.

 

  유시민이 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이 있다. 거기에는 죽음에 대한 내용을 한 챕터를 할애했다. 그는 죽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소설도, 영화도, 연극도 모두 마지막이 있다.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스토리가 크게 달라진다. 어떤 죽음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과 의미, 품격이 달라진다라고,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에 생전 장례식이라는 개념이 소개된다. 죽기 전에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네며 함께 삶의 구비를 걸어왔던 친구나 지인들과 흥겨운 파티를 열어 즐겁게 작별하여 내 삶과 죽음을 애통함이 아니라 유쾌한 기억으로 남겨야 한다고 피력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사람의 예가 등장한다. 연암 박지원은 노환으로 거동할 수 없게 되자 약을 물리치고 술상을 차려 친구들을 불러들였다. 친구들이 말하고 웃는 소리를 들으면서 죽음을 맞이했고 미국의 유명한 회계법인 KPMG 회장이었던 유진 오켈리는 53세에 뇌암 확진을 받았는데 남은 시간이 딱 석달뿐이었다. 그는 삶의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편지와 전화로 작별 인사를 하였는데 그 수가 일천 명이 넘었다. 그리고 가까운 친지들을 초대해 좋은 식당에서 고급 와인을 나누면서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90일 동안의 경험과 사색을 정리하여 책을 남기고 자기의 삶을 충분히 음미하고 지구의 행성을 떠났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생전 장례식을 치룬 또 다른 예가 또 있다. 지인이 보내준 카톡 내용이다. 미국에서 한국인 내과 의사가 암 판정을 받게 되어 시한부 인생이 되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냈다. 당신들이 입는 옷 중에서 가장 예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오라는 단서도 붙였다. 그래서 그는 화려한 파티를 열었다. 이게 바로 생전 장례식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조문이나 장례식은 떠난 이의 명복을 비는 동시에 상실감에 빠진 유족을 위로하는 자리가 아닌가? 나는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한 번도 뵙지 못한 고인에게 명복을 비는 기도를 하는 것 보다 차라리 살아 생전에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합리적이 아닌가를 늘 생각하곤 하였다. 결혼식은 부모의 하객이 대부분이지만 장례식은 자녀들의 지인들이지 않는가. 차라리 생전 장례식이 훨씬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출간회는 화려한 파티는 아니지만 지인들을 초대하고 소통하는 생전 장례식을 치루고 싶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손녀가 하나 있다. 잘 키우고 싶었다. 여기서 잘 키운다는 것은 심성이 아름답게 키우고 싶다  는 뜻이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도 자식을 잘 키우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잘 키우려는 밑그림도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냥 막연하게 잘 키우고 싶다고 말한다.

 

  2주일 간격으로 손녀가 와서 행동하는 것을 보면 내 맘에 안 드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동화라는 수단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평소에 나타난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 그리고 앞으로 예견되는 태도,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마음, 친구 관계, 먹거리 등을 글감으로 해서 짤막짤막한 이야기를 써서 일주일 내내 같은 내용을 읽어주도록 주문을 했다. 유치원 다니는 1년 동안 모은 짧은 동화가 62편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그냥 사장시키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행여 자녀를 키운 부모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그 원고를 한데 묶어 줍는 마음 버리는 마음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세상에 얼굴을 내놓게 되었다.

 

  그 동안 졸작을 몇 권 출판을 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출간 기념회를 한 적이 없다. 이번에 출간 기념회를 기획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귀한 내 손녀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고 또 만남의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 이것은 겉으로 나타난 뜻이다. 그러나 속뜻은 바로 생전 장례식을 치루고 싶었던 것이다.

연암 박지원이나 유진 오켈리처럼 죽기 바로 직전에 생전 장례식을 하는 것 보다 건강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생전 장례식을 마련한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몇 번의 생전 장례식을 더 치루고 싶었다.

생전 장례식이기 때문에 꽃도 받지 않고 부의금도 일체 받지 않았다. 장소가 학교 시청각실이었기에 화분도 학교에서 잠깐 빌려 리본만 달았다. 그래서 하객들의 마음만 받기로 하였다. 몇몇 지인들은 책값을 준비했다가 거절하니까 약간은 당황하기도 하였다.

 

  마지막 이유가 또 하나 더 있다. 요즘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근육을 키우는 운동이 아니라 정신적인 운동을 하고 있다. 단전 호흡? 아니다. 그러면 명상? 그것도 아니다. 바로 밥 한끼 대접하기 운동이다. 목표는 천 명을 잡았다. 그런데 오늘 백 명을 초대했으니 오늘 오신 분은 목표 달성에 도움을 주셨기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내 주위에는 이런 분이 있다. ‘밥 잘 사주는 남자라는 수필집을 낸 분이 있는데 밥을 잘 사준다. 500명에게 직접 손수 밥을 지어 대접한 분도 있다. 나도 초대되어 대접받은 적이 있다. 이런 분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과 교류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출간 기념회는 따뜻하고 의미 있는 행사였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아무도 할 수 없는 특별한 행사라고 강조해 준 분도 있었다. 누군가가 출판 기념회를 준비하기 위하여 참관하러 왔다면 어느 것도 따라할 수 있는 내용이 없었다고. 남곡 선생님 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행사였기 때문이라고. 물론 덕담으로 하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출간을 축하 주었고 음식도 맛있게 드신 모습을 보니까 참으로 내 마음이 흐뭇하기만 하였다.

 

  오늘 치룬 생전 장례식에 많은 의미를 담고 싶다.

 

                                    이병희-1998년 한맥문학 수필로 등단

                                    수필집-두더지는 땅속이 갑갑하지 않다.

                                    수상- 한국글사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