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廣州)이씨 방 11

강금복 여사를 회고(回顧)하다-광주 이씨 이수성의 모친

강금복 여사를 회고(回顧)하다 강금복(姜今福: 1911~2001) 여사는 서울대 총장ㆍ국무총리를 지낸 광주 이씨 이수성(李壽成:1939~)씨의 모친이다. 새내기 교사의 죽음을 접하고- 강금복(姜今福: 1911~2001) 여사는 서울대 총장ㆍ국무총리를 지낸 이수성(李壽成:1939~)씨의 모친이다. 강 여사는 울산 갑부집의 1남2녀 중 맏딸로 태어나 경북고녀와 일본여대를 나왔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엘리트 여성이었다. 24세 때 경기여고에서 교생실습을 하던 중 오빠(강정택 전 농림부 차관, 납북)의 중매로 동경제대 법학과를 나온 이충영(李忠榮)변호사와 결혼한다. 이 변호사는 일제 치하에서 판사로 재직하면서도 법정에서 꼭 한복 두루마기에 고무신을 신은 채 재판을 했고, 1943년엔 창씨 개명을 거부하고 법복..

叙懷奉寄宗工 鄭相國(서회봉기종공 정상국)

叙懷奉寄宗工 鄭相國(서회봉기종공 정상국) -회포를 서술하여 종공 정상국에게 바치다 李 集 平林渺渺抱汀洲(평림묘묘포정주) -평평한 숲 아득히 모래섬을 감싸고 十頃烟波漫不流(십경연파만부류) -안개낀 넓은 물결 흐르지 않는 듯 待得滿船秋月白(대득만선추월백) -가을 달빛이 배에 가득하기를 기다려 好吹長笛過江樓(호취장적과강루) -긴 피리 멋드러지게 불며 강루를 찾으리

광주이씨(廣州李氏) 대종회 이해재(李海載) 회장

광주이씨(廣州李氏) 대종회 이해재(李海載) 회장 조선 초기 최고의 문벌이었던 광주이씨(廣州李氏)의 시조(始祖)는 신라 내물왕(奈勿王:제17대왕, 재위기간 356?402)때 내사령(內史令)을 지낸 이자성(李自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실성왕 15년(416) 눌지왕을 도와 그 자손에게 칠원성(漆原城)을 하사받아 자자손손(子子孫孫) 신라에서 벼슬을 세습해 오다 제56대 경순왕(敬順王)에 이르러, 신라가 고려(高麗) 태조 왕건에(936) 손국(遜國)하자 이에 불복(不服)하고 절의(節義)를 지켰으므로 고려 태조(太祖)가 강계(降階)하여 회안호장(淮安戶長)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본관(本貫)을 회안으로 칭관(稱貫)하다가 940년(태조23) 지명이 광주(廣州)로 개칭됨에 따라 광주를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道美寺 雜詠(도미사 잡영)

道美寺 雜詠(도미사 잡영) 도미사에서 읊다 이집(遁村) 欲向前村買釣舟(욕향전촌매조주) -앞마음에서 고깃배를 사려함은 此身只合臥滄洲(차신지합와창주) -이 몸 창주에 누움이 어울려서라네 留連剩得蓴鱸興(유연잉득순로흥) -게다가 순채와 농어의 흥취도 얻나니 寶德灣頭八月秋(보덕만두팔월추) -보덕만 어구에 8월 가을이 한창일 때면.

조용헌 살롱[711]환가탄생(換家誕生)

조용헌 살롱 [711]환가탄생(換家誕生) 우리 선조들은 지령(地靈)이 뭉쳐 있는 지점에서 인물이 탄생한다고 믿었다. 특히 임신이 되는 입태(入胎) 지점과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출태(出胎) 지점의 지령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명문가에서는 입태와 출태가 이루어지는 산실(産室)을 집안에 별도로 만들어 놓고 특별 관리를 하였다. 조선 성종조 무렵에는 광주이씨(廣州 李氏) 집안에서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였다. 둔촌(遁村) 이집(李集·1327~1387)의 손자인 이인손(李仁孫)이 우의정을 지냈는데, 이인손의 아들 5명과 손자 9명이 모두 대과에 급제하는 이변(?)을 보였던 것이다. 이 무렵에 생긴 말이 '팔극조정(八克朝廷)'이다. 조정의 어전회의에 광주이씨 극(克)자 항렬 8명이 영의정에서부..

둔촌 이집과 천곡 최원도의 우정

둔촌 이집과 천곡 최원도의 우정 고려 말기에 이당은 광주고을 관아의 아전 출신으로 원님의 딸과 결혼했던 신분이 기록에 남아있어서 광주 이씨의 중시조로 모셔지고 있습니다. 이당은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5명의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이당의 아들 이집에게는 최원도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영천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하자 개성으로 올라와 이집과 어울리며 살았습니다. ​ 이집과 최원도는 함께 동문 수학하였으며 벼슬길에 나아가서도 둘사이의 우정은 아주 돈독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그 시기는 공민왕이 개혁을 위해서 등용한 요승 신돈이 절대 권력을 휘드르자 점차 타락하여 세상이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 최원도는 공민왕 때 대사간(大司諫)을 지냈는데 여러번 신돈의 전횡을 비판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자,..

松都客去(송도객거)/李 集(遁村)

松都客去(송도객거) 李 集(遁村) 潦倒一狂夫(요도일광부) 星星白鬂鬚(성성백빈수) 交遊已渙散(교유이환산) 身世再鳴呼(신세재명호) 舊業荒三徑(구업황삼경) 僑居近九衢(교거근구구) 却慙無寸廩(각참무촌름) 歲晩客京都(세만객경도) -쓸모 없고 미치광이 같은 이 몸 / 양쪽 귀밑머리 희끗희끗해졌네 사귀던 벗들은 이미 흩어지고 / 홀로 남아 탄식만 하는 신세 예전 살던 집은 삼경이 거친데 / 지금 사는 집은 큰 길에서 가깝네 더욱 부끄러운 일은 조금도 쌓아둔 것 없이 / 늘그막에 경도에 머무는 것 이네 松都客去-公避辛旽之禍 窃負其父 隱居永川 旽敗 煥松京 -공이 신돈의 화를 피하여 몰래 아버지를 업고 영천에 은거하 였다가 신돈이 실각하자 송도로 돌아왔다. *참고 자료 -작품 사이즈 45✕100cm -작가 약력 *면암서예..

환가 탄생

환가 탄생 우리 선조들은 지령(地靈)이 뭉쳐 있는 지점에서 인물이 탄생한다고 믿었다. 특히 임신이 되는 입태(入胎) 지점과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출태(出胎) 지점의 지령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명문가에서는 입태와 출태가 이루어지는 산실(産室)을 집안에 별도로 만들어 놓고 특별 관리를 하였다. 조선 성종조 무렵에는 광주이씨(廣州 李氏) 집안에서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였다. 둔촌(遁村) 이집(李集·1327~1387)의 손자인 이인손(李仁孫)이 우의정을 지냈는데, 이인손의 아들 5명과 손자 9명이 모두 대과에 급제하는 이변(?)을 보였던 것이다. 이 무렵에 생긴 말이 '팔극조정(八克朝廷)'이다. 조정의 어전회의에 광주이씨 극(克)자 항렬 8명이 영의정에서부터 장·차관 벼슬까지 참석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