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강남노회주일학교연합회주최 글짓기대회 심 사 평 이병희(한국문인협회 회원)
태초에 하느님은 땅과 하늘을 지어내시고 빛이 생기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빛이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글짓기 주제는 신앙인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빛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시각적인 빛도 중요하지만 우리들 마음 속을 비춰주고 관리하는 것도 빛의 역할이기에 빛을 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한다. 글을 짓는다는 것은 내 마음을 표현한 활동이다. 화창한 봄날, 대자연 속에서 내 마음을 원고지에 쏟아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는 일이다. 잠시나마 하느님의 작품인 빛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것 만도 참가자들은 큰 은혜를 받은 셈이다. ‘빛이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주제를 보고 더 구체적인 제목을 정해서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제목에 따라 글을 쓸 때 주의할 점은 빛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빛과 연관된 나의 경험을 쓰고 나만의 생각이나 느낌을 써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글을 짓는다는 것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설명하는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내 경험이 씨앗이 되어 거기서 뿌리가 나고 싹이 돋아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빛이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모든 분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주제 : ‘빛이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
<참고 작품①> 친구야, 미안해~ “너 이놈, 이리와~”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한 괴한에게 붙잡혀 캄캄한 골방에 갇히고 말았다. “너의 잘못을 네가 알렸다.” 하면서 열쇠를 찰그닥 잠그고는 그 괴한은 사라져 버렸다. 주위가 너무나 깜깜하여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로 구별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답답한 시간을 처음 느껴본 탓이기게 가슴이 터질 것 만 같았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를 했다. “하느님, 저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용서해 주세요. 무조건 이렇게 캄캄한 방 에 가두어 두면 저는 어떡합니까?” 그러자 와~ 창문으로부터 환한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양팔을 벌리면서 환호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너, 오늘 영호한테 한 말을 생각해 보아라.’하는 음성이 들렸다. “민철아, 너 학교에 늦겠다. 어서 일어나야지?” 하는 엄마의 소리에 잠을 깼다. 꿈을 꾼 것이었다. ‘내가 영호한테 뭘 잘못했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맞다. 그것이로구나. 내가 왜 그것을 깨닫지 못했지?‘ 영호는 우리 반 남자 아이인데 다리를 약간 절둑거리는 아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고 있는 아이다. 그렇지만 나는 한 번도 영호를 놀린 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영호가 날 보고 남자답지 못하고 비겁하다는 것이다. 며칠전 영호가 반 친구와 싸운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친구의 편을 들었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신경질이 나는 큰 소리로 대들었다. “야, 병신아, 내가 왜 비겁하니? 나는 정정당당하게 판단했을 뿐이다. 왜?” 그러자 영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 가버렸다. 영호는 다리가 불편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놀리는는 말 중에서 ‘병신’이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 나와버리고 말았다. 속으로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 자리에서 사과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꿈을 꾸고 나니 그 때 사과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정말 영호에게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아이보고 ‘병신’이라고 했더라면 별 문제가 없었을 터인데 다리가 불구인 영호에게 ‘병신’이라고 했으니 그 상처는 치명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영호야, 미안해, 정말로.” “뭘 새삼스럽게.” “너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 것 내가 사과할게.” 하면서 나는 영호의 손을 꽉 붙잡았다. 영호도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친구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주제 : ‘빛이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 <<참고 작품 ②> 빛과 식물 내가 3학년 때의 일이다. 담임 선생님께서 강낭콩 4개씩을 나누어 주셨다. “강낭콩을 두 개씩 나누어서 각각 화분에 심은 다음에 하나는 햇빛이 잘 드 는 곳에 두고 하나는 응달에서 키우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관찰 일기도 써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싹이 빨리 나오게 하려고 강낭콩을 물에 불려서 심기로 했다. 접시에다 솜을 깔고 물을 흠뻑 적신 다음에 강낭콩을 두었더니 금방 싹이 올라와서 바로 화분에다 심어서 각각 양달과 응달에 하나씩 놓고 키우기로 하였다. “야, 싹이 나왔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까 완두콩 떡잎이 나왔다. 그런데 양달에 있는 것만 나오고 응달에 있는 것은 아직 싹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얼마 후에 응달에 있는 것도 떡잎이 나오긴 나왔다. 강낭콩을 키우면서 나는 이상한 것을 발견하였다. 양달에 있는 것은 줄기도 튼튼하고 잎도 무성한에 응달에 있는 강낭콩은 키만 컸지 부실하기 그지 없었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선생님께서 양달과 응달에다 놓고 따로 키워라고 하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양달에 있는 강낭콩은 잘 익어서 수확할 수 있었지만 응달에 있는 강낭콩은 비실비실하더니 결국 시들어 죽고 말았다. 나는 강낭콩을 기르면서 햇빛의 고마움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다. 햇빛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빛을 지으셨나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햇빛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 본 적이 없다. 이번에 강낭콩을 키우면서 경험을 통하여 햇빛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께 강낭콩을 키운 이야기를 했더니 “참 좋은 경험을 했구나! 햇빛이 없으면 동물도 식물도 그리고 우리 사람도 살아갈 수가 없단다.” 라고 자세한 설명을 해 주셨다. 나는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빛을 만들어 주셔 서 감사합니다. 빛이 없으면 밤과 낮도 없을 것이며 밤에는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할텐데 빛을 지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강낭콩 키우기를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신 담임 선생님께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주제 : ‘빛이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 <작품③> 하느님이 지으신 빛에 감사 비타민 D가 부족하면 꼽추가 된다고? 건강 프로그램인데 비타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비타민은 소량이 필요하지만 그 비타민이 부족하면 치명적인 질병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 비타민 D는 음식물로도 만들어지지만 햇빛만 쬐면 비타민 D가 자동적으로 만들어진 다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다. 성경 말씀에 태초에 하느님은 땅과 하늘을 지어내시고 빛이 생기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는 말을 지난 주 주일학교 선생님께 배웠다. 만약에 하느님이 빛을 지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 번 상상해 보았다. 우선 낮이 없고 밤만 계속될 것이다.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동물이나 식물은 또 어떻게 성장하고 자랄까? 다 말라비틀어져서 열매도 맺을 수 없을 것이다. 비타민 이야기에서 나온 것처럼 사람들은 햇빛을 못 보면 꼽추도 많아지지 않을까?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얼굴이 햇빛에 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동안 살아왔다. 그런데 돈도 들이지 않고 비타민 D를 만들 수 있는 햇빛을 싫어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에 30분 이상은 햇빛을 쬐어야만 건강에 좋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시기에 이 모든 것을 미리 예측하고 빛을 지어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였다는 생각을 하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꽉 차게 되었다. 이번 주 일요일에는 주일학교에 나가서 하느님께 좀 더 진지하게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겠다.
주제 : ‘빛이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 <작품④> 빛을 받지 못한 아쉬움 저 분은 얼마나 답답할까? 엄마와 함께 이모집에 가려고 전철을 타러 내려가는 중이었다. ‘어? 계단도 잘 내려가네.’ 시각 장애인이 지팡이에 의지해서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한 동안 쳐다보았다. 다 내려가서는 전철역에 붙어 있는 점자를 검색하는 것이었다. 그 분이 타고 싶은 칸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시각 장애인을 이따금씩 만나긴 하지만 오늘은 유별나게 그 분이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지난 주 주일학교에서 ‘빛이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공부를 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빛을 볼 수 있는데 어찌하다가 시각 장애인이 되어 빛의 혜택을 보지 못할까 라는 생각을 하니 많이 안타까웠다. 얼마 전에 읽었던 ‘독서불패’라는 책에 헬렌켈러가 나왔는데 읽는 도중에 가장 가슴이 아팠던 부분이 떠올랐다. 내가 만약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 첫날은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 날에는 새벽에 일어나 먼동이 터오르는 모습을 보고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활기찬 모습을 보고 점심 때에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 때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싶다. 그리고 3일 동안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다. “엄마, 시각장애인들은 얼마나 불편할까요?” “말로 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니?” “저는 하느님께 감사해요.” “왜?” “저는 하느님께서 만든 빛을 받을 수 있잖아요?” “정말 그렇구나~ 감사 기도를 항상 드리도록 해라.” 오늘은 시각 장애자를 만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어 참 좋았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예민한 감각이 생겨서 어지간한 것은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그래도 하느님께서 지으신 빛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빛을 받지 못한 시각 장애인을 만나면 어떤 도움이라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그 동안 성장해 오면서 눈을 뜬 것에 대한 감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눈을 뜨고 있는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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