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만 하고 말을 못하는 한국사람
“여름방학이라 3박 4일로 파리 관광을 왔는데 오늘 몽마르트 그림마당에서 이리저리 구경 다니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언제 한국에서 왔나?”
“한국이 아니라 네덜란드에서 왔습니다.”
“네덜란드?”
“아빠가 네덜란드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으셔서 온 가족이 3년 전에 이사를 했습니다.”
“그랬구나?”
“지금 학교는 어디서 다니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외국인학교에 다니고 6학년입니다.”
“프랑스에 대하여 아는 게 많은가?”
“별로 없습니다.”
“프랑스에 대하여 어떤 것을 아는지 물어봐도 될까?”
“프랑스는 멋진 나라입니다. 역사와 문화가 유럽에서 가장 탁월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인 인물을 누구라고 생각하나?”
“나폴레옹입니다.”
노랑머리 렌이 끼어들었습니다.
“빈, 정말 나폴레옹에 대하여 알아?”
“많이는 모르고 약간…….”
렌의 아빠가 렌한테 물었습니다.
“넌 나폴레옹에 대하여 얼마나 알지?”
“한국의 이순신 장군은 알아도 나폴레옹에 대하여는 말만 들었어요.”
“그렇겠구나. 한국에서 더 많이 살았으니 프랑스보다 한국에 대하여 아는 게 많을 것 같다.”
렌이 음료수를 마시며 말했습니다.
“아빠, 나 모르는 이야기보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 없어요?”
“역사 이야기보다 재미있는 게 뭐겠니. 안 그런가, 빈?”
“네, 역사 이야기는 아주 재미있어요.”
렌이 또 끼어들었습니다.
“나는 역사 얘기 별로야.”
아빠가 말했습니다.
“역사를 아는 것은 그 나라를 아는 것이다.”
렌의 엄마도 눈을 깜박거리며 바라보다가 한 마디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 역사 안 가르치고, 영어 병에 걸려 있어요.”
승빈이 그 말을 새겨들었습니다. 한국에는 역사 공부시간보다 영어공부 시간이 많고 국어를 무시하고 외래어에 나랏말을 다 잃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속을 알고 있는 듯 렌이 말했습니다.
“엄마 말씀이 맞아요. 나도 한국에서 역사 공부시간이 많지 않아서 한국 인물 동화집을 사서 한국의 역사를 배웠어요. 다른 나라에 가서 살면 그 나라 말과 그 나라 역사와 풍습이 가장 알고 싶어지는데 한국 사람들은 영어에만 매달려 있어서 역사를 배울 수가 없었지요. 한국 사람들 영어는 열심히 배우면서 모두 벙어리에요. 호호호.”
렌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말을 먼저 가르치지 않고 문법공부에만 매달리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문법은 영국이나 미국 사람 못지않게 아는 것 같은데 선생님이나 학생이나 말은 렌의 말대로 영어를 못하는 벙어리였어, 하하하.”
렌이 아빠의 장단에 신이 났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말을 먼저 배우고 문법을 배워도 좋을 텐데 말은 안 배우고 문법만 하다가 다 벙어리를 만들어 놓았어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한국 사람들은 시험 중심으로 공부를 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생각된다. 시험은 100점인데 말은 10점도 안 되니 그럴 바에는 없지. 문법에 매달리지 말고 말을 먼저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하는 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렌이 말했습니다.
“오늘은 그만 이야기해요. 내일 또 하고요, 빈이 쉬게 해 주어야 할 거예요.”
엄마도 동의했습니다.
“그래, 쉬도록 해 주는 게 좋다. 삼층 손님방을 안내해 주어라.”
렌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빈, 따라와.”
렌의 집은 1층이 거실이고 이층과 삼층에 침실이 있었습니다. 렌이 계단을 올라가면서 설명했습니다.
“빈, 기분 좋아?”
“응.”
“여기 이층은 이쪽이 엄마 아빠 침실이고, 저쪽에 있는 방이 내 방이야. 내 방도 보고 갈래?”
“나중에.”
“알았어. 빈은 한국 사람이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유럽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면 금방 방 구경을 하고 침대에까지 올라가 보는데 한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 조심성이 많은 사람들이고 예의가 바르기 때문일 거야.”
“부끄러운 걸.”
“한 층 더 올라가면 삼층에도 방이 둘 있어.”
그러면서 삼층으로 올라가서 안내했습니다.
“여기 방 두 개가 있고 앞에 샤워 룸하고 화장실이 있어. 손님이 올 때 모시는 방이야.”
승빈이는 렌이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넓은 침대도 있고 남쪽 벽은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파리 시내 일부와 동쪽 멀리 센 강이 불빛에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낼 봐. 빈!”
렌이 생끗 웃어 보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조용하고 아늑한 방입니다. 하루 종일 헤매다가 렌의 도움으로 하루를 편히 지내게 된 것이 고맙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엄마 아빠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 아빠 어디……?”
이렇게 중얼거리기만 해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엄마 아빠 생각으로 창가의 둥근 테이블 의자에 앉아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다가 침대로 올랐습니다. 침대에서 잠깐 잔 것 같은데 날이 밝았습니다. 밖에서 렌이 불렀습니다.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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