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이 있는 글방/내가 쓴 동화

어머니의 지문

한실25시 2024. 3. 20. 21:35

<효행 동화 19>

어머니의 지문

 

  “어머니, 이 스타킹 누가 빨랬어요?”

  미영이는 어머니께 신경질을 부리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왜 그러냐? 뭐가 잘못 되었냐?”

스타킹이 이렇게 다 나갔지 뭐예요? 이걸 어떻게 신어요?”

미영이는 얼굴을 붉히면서 짜증스런 목소리로 대꾸를 하였습니다.

이 애미가 조심스럽게 빤다고 빨았는데 …….”

어머니는 일을 많이 해서 손이 거칠기 때문에 스타킹처럼 이렇게 부드 러운 것을 만지면 안 된다는 것도 모르세요?”

알았다. 이제부턴 손을 안 대마!”

어머니는 일손이 바쁜 가운데도 사랑스런 딸의 스타킹을 빨아준다는게 그만 이런 화를 불러일으키게 되었습니다.

 

  미영이네 집은 면사무소가 있는 작은 마을에 있습니다. 미영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지었던 농사가 모두 어머니 몫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 시도 허리를 펼 날이 없었습니다. 논과 밭의 김을 매야 했고 수시로 농약을 쳐야 했습니다. 거름을 지게로 져날라야 했으며 호미질, 낫질을 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일에 묻혀서 살다보니 손이 거칠어질대로 거칠어졌습니다. 손을 만져보면 굳은 살이 박혀서 차마 만져볼 수가 없습니다. 어찌나 꺼칠꺼칠하든지 마치 나뭇대기를 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손으로 스타킹을 빨았으니 그 스타킹이 온전할 리가 없었습니다.

 

  미영이는 외동딸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어려움 없이 자랐습니다. 딸 교육을 위한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머니의 뜻을 헤아려 미영이도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성적도 우수하여 읍내에 있는 상업 학교에 진학을 하였습니다. 집안 형편은 어려웠지만 어머니의 교육열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상급 학교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졸업을 하자마자 미영이가 사는 마을의 면사무소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미영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학교에서 애국조회 시간에 운동장에서 쓰러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난 다음에는 미영이가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를 다 받아보았지만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미영이는 옛날같이 않았습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까지 가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이곳 저곳을 다니다보니 병원비가 엄청나게 많이 들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할 수 없이 논을 한 마지기 팔았습니다. 논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미영이가 완쾌만 된다면 논밭을 다 팔아서라도 그 뒷바라지를 하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어서 옛날의 모습을 찾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1학년 겨울 방학이 되자 미영이는 조금씩 기운을 차리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약을 썼는데 그것이 이제야 효과가 나타난 모양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한없이 기뻤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밝은 웃음을 머금고 공부하는 모습은 천사보다 더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이렇게 키운 딸이 어머니께 마구 대드니까 어머니는 한편으로는 속이 상했습니다. ‘어떻게 키운 딸인데…….’ 혼자 이렇게 되뇌여 보면서도 역시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이 애미한테 분풀이를 했을까!’ 이런 생각으로 위안을 해 보았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미영이가 숨차게 뛰어와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기는 면사무소인데요. 어머니 계세요?”

지금 밭에 가셨는데요. 웬 일이시지요?”

전화 받으신 분은 누구세요?”

저는 딸인데요.”

, 그렇습니까? 그러면 잘 되었네요. 도대체 어머니가 얼마나 일을 많 이 하셨기에 주민등록증에 지문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 지문이 안 나타나다니요.”

너무 일을 많이 해서 엄지손가락의 지문이 닳아 없어졌어요. 한 며칠 동안만 일을 쉬게 하세요. 그러면 지문이 다시 생기게 되니까요.”

 

  미영이는 누가한테 한 대 얻어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에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지문이 없어지다니!’ 그렇게 고생하신 어머니께 그까짓것 스타킹에다 흠집을 좀 냈다고 짜증을 부린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쥐구멍이라고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미영이는 부리나케 밭으로 뛰어갔습니다. 밭을 메고 계시는 어머니의 등에 업혔습니다.

엄마! 나 밉지?”

밉긴 왜 미워? 사랑하는 내 딸인데.”

엄마, 죄송해요. 스타킹 때문에 엄마 속을 상하게 해서요.”

아니다. 내 거치른 손 때문에 스타킹을 망쳐놓은 내가 잘못이지.”

엄마, 요 며칠 동안만 일을 쉬면 안 되나요? 지문이 살아나야 주민등 록증에 손도장을 찍을 수 있대요.”

미영이는 어머니의 손을 꼬옥 쥐어보았습니다. 오늘따라 어머니의 손이 부드럽게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