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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기다림

한실25시 2024. 7. 22. 20:31

한밤의 기다림

아무리 작은 소리도자정이 지나면 귀에 거슬린다.
하물며 반복되는 기계음 소리는 말할 것도 없다.

지난달 이사온 윗층에서 새벽 1시가 지나면 어김없이 모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찌~익 찌~익 끊어질듯 이어지고 이어졌가다  멈추기를 수 십 차례 반복한다.

참! 예의도 없다.한밤 중에 어쩜 저렇게 염치 없는 짓을 할까?
아랫집에 인내력 시험하는 것도 아니고... 온갖 투정이 났지만
내일은 그치겠지 하고 꾹 참고 지낸지 벌써 한달을넘겼다.

가끔 층간 소음으로 이웃간 다툼이 있다는기사를 볼 때마다
"역지사지 하지... 서로 조금만 이해하지..."

하며 탓하였는데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인내력에 한계가느껴졌다. 몇날을 벼르다 오늘 아침 일찍 단단히 맘을 먹고 올라갔다. 초인종을 길게 눌렀다.

'딩동댕 딩동댕'
'누구세요?'
'아랫집입니다.'

90을 전후한 할머니가 잠을 설치셨는지 눈을 비비시며  빼꼼히 문을 연다.
'아랫집에서 왔습니다. 날마다 잠을 잘 수가없습니다.'

'그렇잖아도 밤마다 죄송스러웠는데 미처 양해를 드리지 못했네요.
사실은 며늘아기가 심장질환으로 주기적으로... 인공호흡을 바로 하지않으면..."
고개를 반 쯤 숙이시며 말을 잇지 못하신다.

당황스럽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

이번엔 내가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빌었다.
순식간에 원고와 피고가 바뀌어버린 것이다.

단단히 맘 먹고 왔는데 예상치 않은 복병이 상황을 한방에 역전시켰다.
그리 길지 않은 침묵이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걸음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무겁다.

나는 안다.인공호흡기의 그 공포를...
30년 전 성모병원응급실에서 딸아이의 가늘어진 숨을 이어주던그 기계음의 처절함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별을 앞두고 숨죽이며 들었던
기계음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찌~익 찌~익"

저녁 무렵,윗층할머니가  알이 굵은 복숭아 한 상자를 들고 내려오셨다.
'아닙니다. 할머니... '

순간 당황했다. 도저히 받아서는 안 될 선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전심을 다한 위로의 선물이라도 전해야 할 입장인데 난감했다.
남의 아픔을 나누진 못 할 망정 그 걸핑게로 선물을 받는다는 건 파렴치범이나 하는 짓이 아닌가?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극구 사양했지만 막무가내  손을 저으시며  커다란 상자를 문앞에 놓고 쏜살같이 올라가 버리셨다.

그날 이후, 자정이 지나도 그 모터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불안하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혹시나? 아랫집 생각하며 힘들어도 참고 계신 건 아닌지요? 할머니."

듣기 거북하던 그 소리가기 다려진다.
마침내 밤공기 뚫고 찌~익 찌~익 기다리던 그 기계음 소리가 아련히 들리는 순간!
휴우 ~~휴우~~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린다.

왜 이제 울려! 얼마나 기다렸는데 한 영혼이 소생하는 소리,
천사같은 시어머니 사랑이 탄로 나는 소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포근한 소리인데!

'역지사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사자성어다. 저만의남의 형편에서

오늘 밤에도 한밤 중 울리는 그 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행여나 울리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된다. 울려라. 울려울려... 울려야 한다!

햇포도가 나오면 알이 튼실한 것으로한 상자를 놓고 와야겠다. 아무도 모르게...

기쁘고 행복한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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