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대와 상대
얼마 전, 일이 있어서 은행에 갔습니다.
서류를 작성해서 건넸더니 창구에 있는 여직원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반대쪽도 쓰셔야 하는데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다른 쪽도 써서 다시 건넸습니다. 일을 마치고 창문쪽으로 오려는데 안내하는 직원이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나가시는 문은 저기 반대쪽에 있는데요."
"고맙습니다!"
나오면서 내가 무심코 말했습니다.
"선(善)과 악(惡)만 '반대'고 나머지는 모두 '상대'인데 세상에선 선과 악은 '상대'라고 부르고 나머지는 '반대'라고 부르네..."
아까 그 여직원이 내말을 들었는지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왜죠?"
마침 창구가 한산했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혹시 여자의 반대가 뭔지 아세요?"
여직원이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남자지요."
"그럼 낮의 반댓말은요?"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밤 아닌가요?"
"아닌데요. 남자와 여자는 '반대'가 아니라 '상대'거든요.
마음 작용이나 몸의 구조가 모두 상대방을 위해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반대가 아니라는 의미지요. 낮과 밤도 '반대'가 아닌 '상대'구요."
여직원이 말해습니다.
"어? 정말 그러네요."
"사물을 반대로 보는 것은 공산주의적인 발상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모든 사물이나 역사적인 사건을 대립개념 즉, 반대개념으로 설명하지요.
투쟁을 합리화하고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한 술수에 우리가 넘어간 것이지요. 우리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생각이나 언어는 공산주의 개념과 같을 때가 많아요."
여직원이 말했습니다.
"듣고 보니까 그러네요.
왜 그걸 몰랐을까요?"
"교육이 잘못돼서 그렇지요.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정부와 백성, 기업가와 근로자, 하늘과 땅, 물과 불 모두 다 '반대'가
아닌 '상대'거든요."
여직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선과 악만 반대군요."
"그렇지요.
원래는 선만 있어야 하는거지요.
그런 상황에서는 구태어 선과 악을 나눌 필요도 없지요.
안타깝게도 악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걸 구별하기 위해서 선을 말하게 된거지요."
"앞으로는 '반대'라는 말 대신 '상대'라는 말을 사용해야겠네요."
"그럼요.
사랑이라는 말도 상대적인 개념이거든요.
혼자서는 사랑을 할 수 없어요.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상대'입니다.
남편의 상대는 아내고, 부모의 상대는 자식이며, 하느님의 상대는 사람입니다.
상대 관계에서만 주고 받는 수수작용이 가능하거든요. 반대나 대립관계에서는 사랑이라는 말이 성립될 수 없어요."
말하는 사이에 사람들이 왔습니다.
아쉽지만 말을 마치고 나왔습니다.
아까 그 직원이 다시 나가는 문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쪽입니다."
내가 목례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들어오는 문이 있으면 나가는 문이 있지요. 그것도 '상대'입니다."
지금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이는 반대와 상대를 구별하지 못해서 오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사랑을 말하면서 대립이나 반대를 이야기 한다면 자기 모순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인체를 보십시오.
눈도 두 개, 귀도 두 개, 코구멍도 두 개, 입술도 두 개, 치아도 윗니와 아랫니가 같습니다.
이 세상에 상대,
즉 짝이 아닌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다'의 상대는 '미워하다'인가요?
반대말은 '이용하다'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간질하는
사기꾼이 되지말고 연결,융합,통섭하는 '사잇꾼'이됩시다.
~청와대투어가는 5호선 전철안에서
[출처]우리말 사용 ~반대와 상대|작성자choiceyu피터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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