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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머리 소녀

한실25시 2023. 1. 19. 14:35

노랑머리 소녀

승빈이 가까이 다가온 낯선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 천사, 천사다!’

놀라서 이런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이렇게 예쁜 얼굴은 처음 봅니다. 화가들이 그려놓은 그림에도 이렇게 예쁜 그림은 없었습니다.

 

황금빛 노랑머리, 호수에 내린 하늘보다 파란 눈, 목련 같은 뽀얀 얼굴, 나이는 약간 어려 보이지만 승빈이보다 커 보이는 키다리였습니다. 천사같이 예쁜 여자 애가 입을 꼭 다문 채 바라보는 눈빛과 마주치자 갑자기 부끄러워졌습니다.

 

승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아이가 안 보이는 성당 뒤로 달아났습니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이 모두 노랑머리가 아니면 하얀 머리, 대머리들입니다. 어쩌다 빨간 머리도 지나가지만 까만 머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엄마, 아빠 어디 있어, 어디 있느냐고?”

승빈은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멀리 센 강이 보이는 언덕에 숲이 있고 큰 나무 아래 비어있는 벤치가 보였습니다. 나무 숲 여기저기에는 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벤치가 놓여 있었습니다. 승빈이는 나무 그늘이 짙게 내린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낯설고 넓은 이 나라 어디서 엄마 아빠를 찾을 수 있어? 난 어디로 가야 해? 엄마 아빠를 못 만나면 어떡해?’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그러나 눈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렀습니다. 누가 볼까봐 얼른 주먹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나뭇가지 사이로 강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울지 않을 거야. 울면 안 돼. 남의 나라에서 울면 안 돼…….’

 

생각은 그런데 눈물은 저 혼자 흘러내렸습니다. 머리에서는 울지 말자 하지만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눈물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보지 않나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아무도 안 보이는데 저쪽 계단에 노랑머리 여자애가 바람에 머리를 날리며 서서 강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승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애가 안 보이는 성당 뒷길로 걸었습니다. 얼마쯤 걸어가는데 까만 머리가 보였습니다.

까만 머리다! 물어보자.’

 

부지런히 까만 머리를 따라갔습니다. 허리가 절구통 같은 사람이 뒤뚱뒤뚱 걸었습니다. 조금 앞으로 가서 돌아보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닮았습니다. 그래서 다가가 말을 건넸습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다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소리를 했습니다. 그 말은 넌 누구냐?’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또 말씀드렸습니다.

아저씨, 저는요 한국서 왔는데요.”

아저씨는 걸음을 멈추고 눈을 껌벅거리며 벙어리 소리를 또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소리에 실망했습니다. 아저씨가 자기 말로 무슨 소리인가 했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갸웃거리고 보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뒤뚱뒤뚱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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