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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를 잃어버리고

한실25시 2023. 1. 14. 19:07

엄마 아빠를 잃어버리고

나는 동양 사람을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인을 보면서 동양 미인을 그려보고 싶어졌습니다. 선이 예쁘고 그림이 잘 그려질 것 같습니다. 돈은 안 받아도 좋으니 그림을 그리게 해주세요.”

이런 말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했습니다.

얼마를 드리면 되는데요?”

그 사람도 영어로 더듬거리며 대답했습니다.

보통 오백 유로를 받는데 동양 미인이라 거저 그려주고 싶어요.”

엄마가 깜짝 놀라 아빠한테 말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오십만 원이라는 것 같은데 어쩌지요?”

오십만 원이 저 사람들이 받는 값이지만 당신은 예쁘다고 거저 그려준다고 하는데 그려 달라고 하지 뭐.”

그래도 어떻게 공짜로 그려요.”

아빠가 화가한테 영어로 말했습니다.

고맙지만 거저 그릴 수는 없습니다. 3백 유로를 드리지요.”

그러자 화가는 얼굴에 꽃이 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그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엄마는 화가가 하라는 대로 자세를 바꾸어가며 앉았습니다. 아빠도 옆에서 더 좋은 자세를 취하도록 도왔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 있는 화가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습니다. 모두가 동양 사람을 그린다는 것이 부럽다는 듯한 눈빛이었습니다.

아빠하고 엄마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승빈이는 이리저리 멋대로 돌아다니며 화가 얼굴도 보고 그림도 보았습니다.

어떤 화가는 아주 나이가 많은 듯 주름이 할머니 그림같았고 어떤 화가는 아주 뚱뚱하여 그림을 배 위에다 대고 그렸습니다. 또 노랑머리에 파란 눈이 그림보다 예쁜 아가씨도 그 속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리 가도 재미있고 저리 돌아가도 이상하게 생긴 사람들이 재미있었습니다. 어떤 화가는 가까이 오라고 손짓도 하고 어떤 화가는 꾸벅꾸벅 졸기도 했습니다. 그림 구경,

 

사람 구경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정신없이 이쪽저쪽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엄마, 어디 있어?”

승빈이는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빠도 엄마도 안 보이고 오가는 사람들에 가려서 길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 아빠아!”

소리쳐 불러보았지만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보았지만 거기도 엄마 아빠는 없었습니다. 넓은 화가들의 장바닥에서 노랑머리 하얀 머리가 구름처럼 많아도 검은 머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검은 머리 사람을 만나 말을 하면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엄마 아빠는 보이지 않고 노랑머리만 보였습니다. 승빈은 울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노랑머리 사람들 틈에서 어떻게 울 수가 있습니까. 화가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골목을 이리저리 부지런히 찾아다니다가 그만 지쳤습니다.

엄마, 어디 있는 거야?”

이렇게 몇 번이나 중얼거렸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구경꾼이 될 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언덕 계단을 올라가 보기도 하고 계단을 빙빙 돌아도 보았지만 검은 머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 뛰어 다녀서 배도 고팠습니다. 그러나 돈도 없습니다. 아무하고도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 벙어리 같은 사람들이 와글거릴 뿐입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이야기를 해주던 언덕 계단으로 가 털썩 주저앉아 불안한 얼굴로 시내를 내려다보며 엄마를 불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엄마 아빠는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끊이지 않고 오르고 내리는 관광객 중에 검은 머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고 있는 승빈이 등 뒤로 한 소녀의 그림자가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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