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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 언덕의 화가들

한실25시 2023. 1. 5. 16:28

몽마르트 언덕의 화가들

아빠는 일어서서 광장을 지나 시장처럼 보이는 그림상가로 다시 발길을 돌렸습니다. 아직도 비좁은 골목길에는 네 칸짜리 관광버스가 증기기차처럼 돌바닥을 털털거리며 골목을 누비고 있었습니다.

승빈이 아빠를 잡아당기며 말했습니다.

아빠, 우리도 저거 한번 타보면 안 될까?”

타보고 싶으냐?”

.”

타 보자.”

아빠하고 엄마가 관광차표를 샀습니다. 그리고 노랑머리들이 깔깔거리고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 틈에 끼어 차에 올랐습니다. 차는 기차 흉내를 내면서 느리게 사람들 사이를 기어가며 털털거렸습니다. 차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길을 내주며 웃고, 차에 탄 사람들도 소리 내어 웃으며 손짓을 했습니다.

관광버스는 주로 화가들이 바글거리는 둘레를 하루 종일 돌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화가가가 많은지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그림도 가지가지라 어떤 그림을 정하여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화가들 모양도 그림보다 재미있게 생겼습니다. 노랑머리, 빨간 머리, 하얀 머리, 대머리……. 화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발도 제대로 들여 놓을 수가 없이 좁았습니다. 그 속에서 자기가 그린 그림을 걸어 놓고 손님을 기다렸습니다.

여보, 이 그림 참 예뻐요.

이거 사면 어때요?”

엄마가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보다는 저기 있는 그림이 좋지 않아?”

아빠가 가리키는 그림은 노랑머리에 목이 길고 코가 오뚝하고 볼이 뽀얀 예쁜 아가씨 그림이었습니다. 엄마가 눈을 흘겼습니다.

당신은…….”

아니야, 내가 해 본 소리야. 저기 저 그림이 좋아 보이는데 당신은 어때?”

엄마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렇게 그림을 구경하다가 아무 것도 사지 못하고 한 화가 앞에서 아빠가 발을 멈추었습니다.   

여보, 이 화가 그림이 아주 섬세하고 좋아 보이는데 당신 한번 그러보면 어떨까?”

나를 그리라고요?”

그래, 여기 왔다 간 기념으로 당신 더 늙기 전에 한 장 그려 가지.”

나보다 당신이 먼저 늙으니까 당신이 먼저 그려요.”

아니야, 이 화가는 여자 그림을 잘 그려. 이쪽에 있는 남자 그림은 형편없잖아.”

그건 모델이 잘못 생겨서 그렇지요.”

당신의 검은 머리가 더 돋보이고 예뻐. 저 사람한테 그림 부탁을 하면 좋아할 거야.”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화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흥미 있게 바라보았습니다. 화가는 하얀 머리에 육십이 넘어 보이고 부드러운 얼굴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나누는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하므로 대강 표정으로 대화 내용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바라보던 화가가 손짓을 하며 의자를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 말을 하면서 친절하게 자리에 앉기를 권했습니다.

말은 안 통해도 표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의자에 앉고 아빠하고 승빈은 서서 이리저리 둘러보았습니다.

화가가 엄마한테 손짓을 했습니다. 손짓으로 하는 말은 이런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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