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이 있는 글방/내가 쓴 동화

송충이를 삼킨 임금

한실25시 2024. 9. 27. 20:05

<효행 동화 30>

 

 

송충이를 삼킨 임금

 

  조선 시대 22대 임금은 정조 임금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뒤주 속에 갇혀 처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곳은 바로 수원에 있는 융릉이었습니다. 한양에서 수원까지는 100리길이나 되었는데도 사흘이 멀다하고 아버지 묘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버지, 제가 왔어요. 제가 없어서 그 동안 심심하셨지요?”

아버지 묘소 앞에서 절을 하고는 또 눈물을 닦기 시작하였습니다. 평소에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은 탓도 있겠지만 특히 아버지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갔던 것입니다.

 

  ‘아버님의 영혼이나마 편히 모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정조 임금님은 자나깨나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야지!’

정조 임금은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버지 산소 둘레에 나무를 심어야겠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떤 나무를 심지?’

정조 임금은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소나무를 심기로 하였습니다. 소나무는 항상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충절을 나타내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나무는 옯겨 심기가 어려운 나무입니다. 잘못 옮겨 심으면 죽기 일쑤입니다. 그렇지만 정조 임금은 직접 땅을 파고 정성을 다해 소나무를 심은 탓인지 한 그루도 죽지 않고 모두 싱싱하게 자랐습니다. 쑥쑥 자라나는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정조 임금은 만족해 하였습니다. 지하에 계신 아버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 더욱 흐뭇하였습니다.

소나무가 한껏 초록빛을 발할 초여름 어느 날이었습니다. 소나무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던 정조 임금님은 신하를 불러 물어보았습니다.

푸른 소나무 잎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데 어찌된 일이오?”

소나무를 쳐다보는 재미로 이곳 수원까지 사흘이 멀다하고 찾아오는데 소나무 잎이 없어지는 것을 본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어찌된 일이오? 어서 말씀해 보세요.”

신하들은 이처럼 당황해 하는 임금님을 처음 보았습니다.

황공하옵니다. 송충이라는 벌레가 솔잎을 갉아먹어 잎이 차츰 없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동안 저희들이 소나무를 보살피지 못한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그 말을 들은 정조 임금님은 비통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것이 어찌 경들의 죄라고 할 수 있소? 효성이 모자란 이 과인의 탓이 지요. 부끄럽습니다.”

아니옵니다. 저희들이 미처 살피지 못해서 생긴 불찰입니다. 용서해 주 옵소서.”

그렇지 않습니다. 이 과인이 부덕한 탓입니다. 그 송충이라는 벌레를 한 번 보고 싶소이다.”

 

그 말을 들은 신하들은 곧 송충이를 잡아 백지 위에 받쳐서 정조 임금님께 올렸습니다. 정조 임금님은 송충이를 한참 동안이나 슬픈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내 아버님이 잠드신 자리의 소나무를 갉아먹느니 차라리 내 불효한 창 자를 갉아 먹어라.”

라고 말씀하시며 송충이를 그대로 삼켜버렸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말릴 틈도 없었습니다.

 

그 뒤, 어디선가 많은 새들이 날아왔습니다. 순식간에 송충이를 다 잡아먹고 말았습니다. 이제 송충이는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신하들은 정조 임금님의 지극한 효성이 하늘까지 닿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