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것만 보이는 근시안
내가 사는 빌라는8가구가 살고 있다.그 중 한 가구는 옥상에다 큰 화분들을 준비해서 각종 채소나 꽃들을 잘 재배하고 있다.요즘도 올라가 보면 상추를 어떻게 그렇게 먹음직스럽게 키워 놓았는지 감탄할 정도이다.아직 밭에서는 상추가 나올 시기가 아닌데도 어쩜 그렇게 잘 키워 놓았는지 모른다.물을 주는 호스도 옥상까지 올려놓아 물을 주는 것도 아주 편리하게 해 놓아 옥상에 올라가 보면 농장 수준이다.아침 일찍 올라가 보면 벌써 물을 주고 거름도 주며 관리에 여념이 없다.키운 작물이 한 번도 시들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참으로 근면하고 열정적이다.
우리 건물 입구에는 네 개의 화분이 있다. 봄이 되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런데 이 화분들은 개인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관리해야 한다. 반상회 할 때 마다 화분의 꽃들이 시들지 않도록 누구든지 물을 주도록 하자고 결의한 바 있다.
그렇지만 그 약속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내 것이 아니니까 전혀 관심이 없다. 시들어 있어도 누가 물을 주는 일이 없다. 옥상에서 농장을 하는 아주머니 조차도 관심이 없다. 내 것이 아니니까 시든 꽃들이 눈에 보일 리가 없다. 눈에 보이면 물을 주게 되어 있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시들어 있는 꽃도 무관심이다.
몇 년 전에 어느 농장에 가서 가죽 나무 한 그루를 사다가 화단에다 심어 놓았다. 작년에 싹이 나와서 잎이 무성하게 자란 모습을 보고 많이 흐뭇해 했다. 어려서 어머니께서 그 가죽나무 잎을 쪄서 풀을 붙여 말려 구어 먹었던 생각이 나서 가죽나무를 구해 왔던 것이다.
올해에도 싹이 예쁘게 돋아나더니 연한 잎이 나오기 사작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운동을 하고 들어오다가 보니까 그 잎을 깡그리 훑어 가고 말았다.
얼마나 성질이 나는 지 한 동안 허공만 쳐다보았다. 누군가 그게 가죽나무라는 것을 알고 따간 것이었다. 그걸 데쳐봤자 한 젓가락도 안 될 터인데 무지막지하게 따갔다는 것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것은 중요하고 남이 가져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남의 것은 아무런 생각 없이 따다가 먹는다? 그게 제대로 소화나 되었을까?
열흘쯤 지났다. 그러니까 이제 겨우 다시 싹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아침마다 그걸 바라보는 것이 내 아침의 시작이다. 그런데 걱정이 앞선다. 조금 자라면 또 그 사람이 따 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년 가을에는 큰 화분에 옮겨 심어 옥상으로 올려놓을 생각까지 하였다.
또 며칠 전의 일이다.
고추 모종을 5개 샀다. 집 앞에 작은 공간이 있어 심어보려고 사가지 왔다. 그런데 우리 건물 화분의 꽃들이 물을 주지 않아 시들시들했다. 그래서 조로에 물을 받으러 갔다왔더니 누군가가 그 모종을 가져가고 없었다. 참 황당했다. 잠깐 사이인데 없어진 것이다. 돈으로 따지면 그게 몇 푼이나 되겠는가? 필요하면 사다가 심어야지 남의 것을 훔쳐간단 말인가.
내것은 소중하고 남의 것은 훔쳐가도 상관 없다는 말인가. 이게 주민들의 수준 탓인가? 많이 실망스러웠다. 내 것이 중요하면 남의 것도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게 법정 스님이 말하는 지옥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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