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이 있는 글방/내가 쓴 수필

교만의 극치

한실25시 2022. 2. 23. 04:15

교만의 극치

 

  어느 문학상 시상식장이다. 평소에 존경하는 선배님이 꼭 참석하라는 부탁에 못이겨 1년에 두 번 모이는 친구 모임에도 불참하고 참석하였다.

  수상을 한 다음에 수상자들의 소감을 듣는 순서였다. 사회자가 수상 소감을 간단하게 하라고 강조하였다

 

  대상을 받는 분이다. 트로피를 들고 나와서 그 내용 중에 왕성한 활동을~’을 운운하면서 장황하게 서론이 시작되었다. 앞부분 축사하시는 분이 수상자들을 칭찬하였는데 대상을 받은 분을 많이 부각하여 홍보하였는데 그 내용을 다시 본인이 짚으면서 훌륭하다고 언급하셨으니 제가 분명 훌륭한 것 맞지요?’라고 하면서 잘난 체를 하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다음이 더 신경을 건드렸다. 대상을 받은 사람은 이 자리에서 문학 강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자가 소감을 간단히 하라고 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자기가 지은 시가 잘 된 시라고 하면서 감정을 살려서(?) 낭송을 하기 시작하였다. 어쩌면 분위기가 그렇게 썰렁한 지 더 이상 자리를 지킬 수가 없어서 그냥 나와버렸다.

  훌륭한 사람은 바로 그 사람에게서 풍겨 나오는 향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뭘 잘 한다고 자랑하는 것은 상대방을 감동시킬 수 없지 않은가? 천자문에 미시기장(靡恃己長)’이라는 말이 나온다. 자신의 장점을 남에게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가만히 있어도 다 그 사람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되어 있는데 그것을 못 참고 나대는 것은 내 가치로는 이해가 안 된다. 그런데 그런 태도는 고쳐지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모처럼 초대받은 자리인데 박차고 일어난 것은 내 성질이 못 돼서 그런 것을 안다. 순간적인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경솔함 때문이었다. 나이가 든다고 철이 든 것이 아니라는 말을 되새기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승무원 중에서 가장 힘든 나라가 '인도'라고 한다. 뿌리깊은 카스트 신분 제도가 존재하는 인도는 승무원의 경우 남의 시중을 드는 하층민에 속한다고 한다. 그래서 승객들이 승무원을 마치 종 다루듯 한다고 하여 가장 근무 환경이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 중에 하나가 바로 비행기 승무원이다. 세계를 여행하고, 아름다운 승무원복에 대한 선망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신분 제도가 부활한 듯, 승무원을 마치 종다루듯 한 대기업 임원 사건이 얼마 전에 발생하였다. 주말에 전해진 소식이고 인터넷을 통해 여러 가지 정황이 밝혀지면서 일파만파로 충격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비행기에 탈 때부터 자리 불만을 토로하고, 기내식을 트집 잡아 라면을 끓여오라 하며, 짜다고 되물리고 식기를 통로에 내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의 시중을 들었던 승무원의 얼굴을 잡지책을 말아서 가격하는 일까지 벌였던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 임원이나 된 사람이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나 있을 법한 일을 저질렀을까 생각하였는데 아침에 전해오는 소식을 들으니 승무원 폭행이 사실이며 위에 열거했던 항공기내 만행이 대부분은 실제 있었던 일인 것 같다.

 

  대기업 임원 승무원 폭행 사건을 접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저런 임원 밑에서 지금까지 일했을 해당 부서 직원들의 모습이다. 대기업 임원이 비행기를 타자마자 미국 간다는 기쁜 마음에 평소와는 다른 만행을 저질렀을리 없다. 십중팔구는 그가 평소에 하던 방식 그대로 옮겼을 가능이 크다는 것이다. 밖에 나가서 처음 보는 승무원에게 밥이 맛이 없다. 라면 끓여와라, 마음에 안든다 등은 평소 그가 평소에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하던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회사에서 천사같은 사람이 갑자기 비행기만 타면 승무원 잡는 독사로 변해버린다? 이것 매우 가능성 희박한 이야기이다. 해당 대기업 임원 밑에서 고생했을 직원들을 생각하면 매우 가슴이 답답해진다.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열심히 한 일에 대해서 트집 아닌 트집을 잡고, 사람을 나무라고 해도 꼭 여러 사람 있는 곳에서 큰 소리로 유세를 떠는 인간들이 있다. 그리고 잘된 일도 아무 이유 없이 다시 해오라고 주문하는 황당한 분들이 꽤 있다.

 

  이것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뒤틀린 사회이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 일에 대한 과중함 보다 정신 건강을 헤치는 것이 있으니 그와 같은 사람이 승진을 잘 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밑에 사람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놀랍도록 윗사람들에게 잘 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회사일을 일로서 보지 않고 매우 정치적으로 업무를 하는 것이다. 한마디

로 매우 줄을 잘 선다는 것입니다.

 

  해당 대기업 임원이 어떤 사람인지는 '라면 다시 끓여오라 하고 식기를 통로에 내던지는 만행에서가 아니라 승무원을 가격한 후에 '폭행 사실에 대해 확인하려고 하자' '자기가 때린 것이 아니라 책을 들고 있는데 승무원이 와서 부딪쳤다'라고 주장한 대목에서 그 분의 인격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사람은 폭력적이면서 지능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대기업 임원까지 올라간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리고 정신적 피로감이 더욱 심했던 것은 우리나라 인사 시스템 제도에 있다. 새 정부의 인사 청문회 난맥상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사람들만 골라서 정부 주요 보직자를 삼을 수 있을까 했지만 우리나라 기업 역시 별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우리 사회는 현재 심각한 중병을 앓고 있다. 실력만 있으면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조금 문제 있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인격과 도덕이 바탕이 되지 않은 실력은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단지 아첨하고 싶은 몇몇 사람과 소수가 공익을 유린하는 결과를 남기게 된다. 이것의 경험적 예는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계속해서 전해져오는 피로감 쌓이는 소식들에 더하여 대기업 임원이라는 사람의 여승무원 폭행 사건을 보면서 '피로야 가라'라는 약 선전이 생각났다. 사람이 꼭 몸만 피곤한 것은 아니다. 열심히 운동하면 몸에 근육이 생기듯이 정신과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마음의 근육에도 황당하고 힘 빠지는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오면 피로가 쌓여서 떡이 되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몸의 피로는 약을 먹어서라도 해결할 수 있지만 쌓여만 가는 마음의 피로는 어디가서 치료받아야 할지 또다시 피곤한 한 주를 맞이하게 된다. 이 사건이야 말로 교만의 극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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