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이 있는 글방/좋은 시

보고 싶은 사람/문 정 희

한실25시 2025. 2. 12. 11:10

보고 싶은 사람

문 정 희

아흔세 살 노모가 자리에 누운 지
사흘째 되는 날
가족들 서둘러 모였다

어머니! 지금 누가 젤 보고 싶으세요?
저희가 불러올게요
아들이 먹먹한 목청으로 물었다
노모의 입술이
잠에서 깬 누에처럼
잠시 꿈틀했다

엄마!
아흔세 살 아이가
해 떨어지는 골목에서
멀리 간 엄마를 찾고 있었다


-『불교신문/문태준의 詩 이야기』2022.10.11. 

 





   노모에게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고, 노모에게도 엄마가 있다. 위중한 노모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 마치 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것처럼 그 목소리로. 노모는 엄마의 존재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자리에 누워서도 가슴속에 묻어둔 엄마를 다시 불러내는 것일 테다. 보고 싶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의 혈관에 흐른다.   문정희 시인은 최근에 펴낸 시집에서 “나를 싸안던/ 무성(無性)/ 엄마라는 인종// 눈물로 핥고 혀로 묶어/ 피와 살로/ 사랑을 꽃피우고/ 끝내는 가 버린/ 엄마라는 슬픔”이라고 썼다. 이제는 엄마라는 존재를 밝은 햇살 속에 모시고 싶다. 꽃들이 활짝 핀 화단에 의자를 놓고 거기에 앉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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