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이 100일밖에 없다면?
한 여인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말기암으로 앞으로 100일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판정을 받았다. 뭘 기도하고 있을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날이 넉달 남았는데 그 전에 이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 한없이 슬퍼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있다. 20일만 더 살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내가 만약 100일밖에 못산다면 많이 바빠질 것 같다. 그 100일을 허송세월할 수는 없지 않은가. 늘어지게 낮잠이나 자고 방구석에 처박혀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어서는 되겠는가?
맨 먼저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할 것이다. 연명 치료 여부를 미리 밝혀 놓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연명 치료의 결정권은 환자 자신인데 만약에 이 연명 치료 여부를 결정해야할 환자가 혼수 상태라면 곤란한 상태에 빠지고 만다. 따라서 사전의료의향사를 작성하여 두어야 법적, 윤리적인 면에서 자유로와 질 수 있다.
다음으로는 고향을 방문하겠다. 부모님 산소에 넓죽 절하고 다시는 찾아올 수 없다고 아뢴 다음 마을 잔치를 한 번 벌여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시면서 지난 날의 추억을 되씹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 다음에는 그 동안 습작을 정리하여 전시회를 열어보고 싶다. 그림이나 글씨가 비록 수준 이하라도 개의치 않고 많은 지인들을 초청하여 소통하고 싶다.
그러니까 죽기 바로 전에 하는 생전 장례식을 치루고 싶다. 지인들에게 올 때에는 화려하고 좋은 옷을 입고 오도록 안내를 하련다. 죽은 다음에는 검은 옷이나 튀지 않는 색깔의 옷을 입고 와야 하니까. 물론 나는 새 양복을 한 벌 맞추어 입고 마음껏 멋을 부리고 싶다.
전시회가 끝나면 가족 여행을 떠나야겠다. 외국 여행이 아니라 국내 여행으로 말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는 섬으로 가서 낚시를 즐기고 싶다. 바로 잡아올린 생선으로 회떠 먹고 매운탕을 끓여 먹으면 이 세상을 곧 하직한다는 생각도 망각하지 않을까.
그 동안 살아오면서 신세를 졌던 분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여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물론 가까이 있는 분은 찾아 뵙고 밥 한끼 대접하면서 그 동안의 도움에 허리를 굽혀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다.
그리고 한 편의 시를 지어보겠다. 나는 시인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있다. 그래서 지난 날의 내 삶의 회한(悔恨)을 내뱉어 마음속에 일고 있는 파도를 잠재우고 떠나련다.
이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이제는 내려놓고 영원히 잠을 자게 될 것을 생각하니 몰아치던 파도가 잠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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