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이 있는 글방/좋은 시 216

나는 아직도 / 박재삼

나는 아직도 / 박재삼 ​ 나는 아직도 꽃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찬란한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만 저 새처럼은 구슬을 굴릴 수가 없습니다 ​ 나는 아직도 놀빛 물드는 마음으로 빛나는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만 저 단풍잎처럼은 아리아리 고울 수가 없습니다 ​ 나는 아직도 빈 손을 드는 마음으로 부신 햇빛을 가리고 싶습니다만 저 나무처럼은 마른 채로 섰을 수가 없습니다 ​ 나는 아직도 무언가를 자꾸 하고 싶을 따름 무엇이 될 수는 없습니다 ​ ​ [출처] 나는 아직도 / 박재삼|작성자 하나라

낙엽이나에게 묻더라-신동현/시인, 문학평론가

낙엽이 나에게 묻더라 -신동현/시인, 문학평론가 낙엽이 자기가 갈 길을 모르겠느냐고 가야 할 길을 알아도 낙엽은 묵묵히 간다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자랑하는 낙엽도 없다 낙엽은 떨어지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다 가을비로 영혼을 닦으면서 날아가는 낙엽중 할 말이 없는 낙엽이 있겠느냐 아프지 않은 낙엽이 있겠느냐 낙엽은 날아가면서도 첼로 소리를 낸다 그런 낙엽은 저 투명한 시간 속에서 어디로 가는가

단풍 드는 날 /도종환

단풍 드는 날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를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ㅡ제1회 한용운 문학상 공동시선집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샘문, 2021.

가을 - 김용택

가을 - 김용택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내 가슴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 지는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