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과 주둥이
입과 주둥이는 그 생김새와 역할이 다르다. 사람은 입을 가지고 있지만 새들의 입은 주둥이라고 한다.
학급 담임을 했을 때 늘 입과 주둥이의 차이점을 강조하여 이야기하였다. 입은 꼭 먹어야 할 것만 먹고 꼭 해야 할 말만 하는 것이지만 주둥이는 먹어야 할 것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다 먹는 것이고,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라고 마구 하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비교하여 강조하곤 하였다. 길거리에서 불량 식품을 사 먹는다면 그것은 입이 아니라 주둥이라고 했다. 수업 시간에 잡담을 하거나 친구에게 상스런 말이나 욕을 했다면 그것은 입이 아니라 주둥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비교가 적절한 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나는 이렇게 주둥이를 가진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아이들을 지도하였다.
요즘 청소년들은 모두 주둥이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입을 가진 청소년이 없다는 말이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상냥한 말은 한 마디도 없다.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난 것이 그들의 대화이다. 그것이 하나의 언어 문화로 정착한 것이 아닌가 싶어 기성 세대들은 걱정이 많다. 옛날에는 불량배들이나 쓰던 상스러운 말을 이제는 학교 성적이 상위권에 있는 모범생들도 스스럼 없이 어울려서 주둥이를 놀리고 있다. 부모한테 반말을 하는 것은 보통이고 반항하는 말투로 대드는 것은 정말 용서가 안 되는 행위이다.
어른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거치른 말투, 상대방을 비방하는 언어 사용, 악담하기 등 어른들도 입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다고 하면 비난을 받을 수 있을까? 특히 남의 허물을 끄집어 내서 운운하는 것은 정말 나쁜 언어 습관이다. 천자문에 ‘망담피단(罔談彼短), 미시기장(靡恃己長)’이라는 구가 나온다.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 자기 장점을 믿지 말라는 뜻이다. 남의 흉을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차피 우리 인간들은 다 부족한 존재들이다. 그렇지만 누구나 다 창조주가 준 달란트를 다 가지고 태어났다. 그렇다면 남의 허물을 볼 것이 아니라 남의 장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악담은 없어지고 덕담만 하게 될 것이다. 이 덕담은 남을 인정하고 위로하고 배려하며 용기와 희망을 주는 아주 좋은 말이다.
내가 교장으로 재직 하는 동안 일년에 꼭 한 번 전교생 수업을 한 시간씩 하였다. 수업 주제는 ‘사람 냄새’였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학년 수준에 맞게 수업을 진행하였다. 수업을 마친 뒤에는 교장 숙제가 있다. 한 달 후에 제출하는 숙제이다.
<숙제①>은 우리 담임 선생님의 장점을 20가지 이상을 쓰는 것이고 <숙제②>는 내 짝의 장점을 20가지 이상 쓰는 것이었다. 담임 선생님들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은 선생님의 친구의 장점을 찾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는 것이다. 그런 태도를 갖게 되는 것만으로도 나는 수업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다고 생각하였다. 한 달 후에 담임들은 아이들이 제출한 숙제를 묶어서 교장한테 가져오도롤 하였다. 장점을 20개 채우려고 애쓴 흔적을 보고 웃곤하였다. 어려서부터 남의 장점을 보려는 눈을 키워주고 싶은 작은 욕심 때문에 아이들을 귀찮게 한 것이다.
교육학 용어에 ‘자성예언’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그 사람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된다는 뜻이다. 나는 그 말의 예를 나한테서 찾아볼 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말이다. 방과 후에 아이들 몇몇이 남아 있는데 선생님의 말씀
“삼근이는 수학을 잘 하고, 수일이는 사회 교과가 우리 반에서 최고이며 병희는 국어 박사가 될거야.”
그 말씀이 나에게 잠재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글짓기대회에서도 좋은 상을 받게 되었고 국어에 관계된 자료라면 관심이 있어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래서 교직에 있으면서도 국어 교육 전반 그러니까 국어과 교육과정, 평가, 수업 전반, 글짓기 교육, 초등 논술 교육, 문장 이해력, 독서교육 등에 많은 자료를 남기게 되었고 지금 70이 넘었는데도 아직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자성예언’의 뜻을 음미하게 된다.
입과 주둥이!
청소년과 우리 나라 모든 어른들이 주둥이가 아니라 입을 가졌으면 참 좋겠다는 소망을 가슴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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