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는 웁니다
우연한 기회에 소설가 이시백님의 ‘어머니의 힘’이라는 글을 대하게 되었다. 교도소 수용자들에게 강의한 내용이 바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군에 간 자식에게 삐뚤빼뚤한 글씨로 "발에 맞는 신발을 신으라"는 자상한 편지를 썼던 어머니는 지금 병중에 있습니다. 자식은 늘 어머니 앞에 죄인입니다. 이 대목이 그 글의 마지막에 나온 구절이었다.
어느 누가 자기 어머니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자가 있을까마는 나는
유별나게 어머니를 좋아했고 따랐지만 효도 하지 못해 지금도 가슴이 맨다.
나는 어렸을 때 항상 어머니 꽁무니를 물고 따라다녔다. 상가집을 가든 결혼
식엘 가든 어김없이 어머니 치마를 붙잡고 따라다녔다.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
해도 알 수가 없다. 아마 어머니와 떨어지기가 싫어서 붙어다녔나보다.
“아줌마는 어디 가도 먼 발치에서도 다 알아요. 뒤에 반드시 혹이 하나 붙어서 다니니까요.“
이런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어머니 치마폭을 떠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어머니를 여읜지 이제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어머니 생각에 잠기면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나오곤 한다.
나는 이상하게 밥이 질면 아주 싫다. 지금 70이 넘었어도 무른 밥을 싫어한다. 무른 밥보다 차라리 날아가는 밥을 더 좋아한다. 꼬두밥처럼 말이다.
옛날 보리밥 하기가 좀 힘들었던가? 게다가 쌀이 어느 정도 섞이느냐에 따라서 물을 맞추는 것도 달라야 한다는 것을 안 것은 어른이 되어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어느 날 아침 밥이 아주 죽밥이었다. 나는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책가방을 챙겨가지고 학교로 달려갔다. 어머니께서도 내가 무른 밥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꾸중도 하지 않으셨다.
수업을 받고 있는데 배가 고파오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오후 수업까지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가 고민이었다. 그렇다고 빵을 사먹을 수 있는 용돈도 한 푼 없으니 이걸 어쩌나!
오전 수업만 마치고 몸이 아프다고 조퇴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지 않으면 방법이 없지 않은가! 아침에 무른 밥이라도 먹고 도시락을 가져왔어야 하는데 그냥 튀쳐나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어머니의 모습이 창가 복도에서 보인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바로 튕겨 나갔다.
“이 애미가 밥을 새로 했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 왔으니 먹고 오후까지 공부하고 오너라.“
나는 그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옛날에는 밥을 할 때 부엌 아궁이에다 불을 지펴서 때야 밥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런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밥을 다시 하시다니! 그렇지만 나는 그 때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불효한 짓이 어찌 그것뿐이었겠는가? 없는 살림에 새끼들 교육 시키느라고 고생을 감수하셨던 부모님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특히 어머니는 16살에 시집을 와서 모진 고생을 다 하셨기에 더욱 가슴이 아프다. 외가는 잘 살아서 귀엽받고 자랐는데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서 고생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어머니의 생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옛날 신발이야 검정 고무신이 고작이었지만 그것도 닳아질까봐 인적이 뜸한 길을 갈 때에는 벗어서 들고 다닌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자전거 운동을 하는 동안 갑자기 무른 밥 사건이 생각이 나자 괜히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불쌍한 우리 어머니, 좋은 옷, 좋은 음식 한 번 입어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셨으니 얼마나 애통한가?
오늘도 불효자는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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