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이 있는 글방/내가 쓴 수필

머리 좀 감겨 줄래요?

한실25시 2022. 12. 8. 16:40

 머리 좀 감겨 줄래요?

 

   “내일 아침에 머리 좀 감겨 줄래요?”

   “그래, 감겨줘야죠!”

   아내가 하는 말에 나는 쉽게 대답했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미장원에 가서 감으면 될 것을 왜 나에게 부탁을 하지?’라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에 아내는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당분간은 세수도 해서는 안 되고 물론 머리도 감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눈에 물이 들어가면 염증이 생기기 때문이란다. 세수는 물 수건으로 닦아내면 되지만 머리 감는 일은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나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미장원에 가서 감으면 되잖아요?”

   ‘물론 되지요, 그렇지만 돈이 들잖아요?“

   미장원에 가서 감으면 편해서 좋겠지만 돈 몇 푼을 내야 하기에 나에게 부탁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흔쾌히 감아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평상시에 나는 이발소에서 머리 염색을 하지 않고 항상 아내가 집에서 해 주었기에 그 은공을 갚을 기회가 왔다 싶어서 기꺼이 해 주기로 하였다.

 

   “, 머리를 감아볼까요? 그런데 자세를 어떻게 하죠?”

   “눈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되니까 이렇게 하면 안 될까요?”

   처음엔 깔고 앉는 의자를 놓고 그 위에 앉아서 머리를 뒤로 하는 자세를 취해 보았지만 불편해서 수건을 바닥에 깔고 앉아서 머리를 뒤로 하는 자세로 하기로 하였다.

눈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머리를 뒤로 젖혀야 하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욕실에서 그 자세를 만드느라 시행착오를 거쳐야했다. 요즘은 이발소에서도 머리를 감을 때 머리를 뒤로 하고 감기 때문에 얼굴에 물을 묻히지도 않고 할 수 있어서 편한 것을 경험했다. 그렇지만 욕실에서는 그런 기구가 없기 때문에 아내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평상시에는 비누로만 머리를 감는데 오늘은 샴푸와 린스까지 준비를 해놓았다. 내 머리 감는 실력이 보나마나일 것이라는 추측 때문에 쉽게 감게 하기 위한 배려라는 생각을 했다.

 

   난생 처음으로 아내의 머리에 손을 댄 것이다. 비비고 문질러서 내 정성을 다 해 머리를 감겼다. 내가 봐도 어설프기 그지 없는 작업이었다. 그렇지만 내 손으로 아내의 머리를 감겨주고 나니 내 기분까지도 상쾌해졌다.

   “아이, 개운해! 당신이 내 머리를 감겨 주니까 머리가 더 윤기가 나는 것 같 네요.”

   거울을 보면서 하는 농담이었지만 내 기분도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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