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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한실25시 2024. 5. 8. 22:02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어머님이 물었어요..

" 그래 낮엔 어딜 갔다 온거유? "

" 가긴 어딜가? 그냥 바람이나 쐬고 왔지! "

 

아버님은 퉁명스럽게 대답했어요.

" 그래 내일은 무얼 할꺼유? "

" 하긴 무얼해? 고추모나 심어야지~ "

" 내일이 무슨날인지나 아시우? "

" 날은 무신날 ! 맨날 그날이 그날이지~ "

 

" 어버이날이라고 옆집 창식이 창길이는 벌써 왔습디다."

아버님은 아무 말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당겼지요.

 

" 다른 집 자식들은 철되고 때되면 다들 찾아 오는데, 우리 집 자식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원~"

어머님은 긴 한숨을 몰아쉬며 푸념을 하셨지요.

" 오지도 않는 자식놈들 얘긴 왜 해? "

" 왜 하긴? 하도 서운해서 그러지요. 서운하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유? "

​​

" 어험~ " 아버님는 할말이 없으니 헛기침만 하셨지요.

" 세상일을 모두 우리 자식들만 하는지..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자식 잘못기른 내죄지 내죄야! "

어머님은 밥상을 치우시며 푸념아닌 푸념을 하였지요"

"어험 !! 안오는 자식 기다리면 뭘해?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아버님은 어머님의 푸념이 듣기 싫은지 휭하니 밖으로 나가셨어요.

다음 날, 어버이 날이 밝았지요.

조용하던 마을에 아침부터 이집저집 승용차가 들락거렸어요.

​​

" 아니 이 양반이 아침 밥도 안 드시고 어딜 가셨나? 고추모를 심겠다더니 비닐하우스에 고추모도 안뽑고.."

어머님은 이곳 저곳 아버님을 찾아봐도 간곳이 없었지요.

​​

" 혹시 광에서 무얼하고 계시나? "

광문을 열고 들어 갔어요.

거기엔 바리바리 싸 놓은 낯설은 봇다리가 2개 있었어요.

봇다리를 풀어보니 참기름 한병에 고추가루 1봉지, 또 엄나무 껍질이 가득 담겨 있었지요.

​큰아들이 늘 관절염 신경통에 고생하는걸 알고 준비해 두었던 것이지요.

​​

또 다른 봇다리를 풀자.. 거기에도 참기름 한병에 고추가루 1봉지, 민들래 뿌리가 가득 담겨 있었지요.

​작은아들이 늘 간이 안 좋아 고생하는 걸 알고 미리 준비해 두셨나 봐요.

어머님은 그걸 보시고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언제 이렇게 준비해 두셨는지..

엄나무 껍질을 구하려면 높은산엘 가야 하는데, 언제 높은 산을 다녀 왔는지..

​​

요즘엔 민들레도

구하기 힘들어 몇일을 캐야 저 만치 되는데.. 어젠 하루종일 안 보이시더니, 읍내에 나가 참기름을 짜 오셨던 거지요.

​​

자식 놈들이 이 마음을 알려는지.. 어머님은 천천히 발을 옮겼어요.

​동네 어귀

장승백이에 아버님이 홀로 앉아 있었지요. 구부러진 허리에 초췌한 모습으로 저 멀리 동네 입구만 바라보고 계셨어요.

​​

어머님은 아버님의 마음을 잘 알기에 시치미를 뚝 떼고,

" 아니 여기서 뭘 하시우? 고추모는 안 뽑구? "

" ......... "

" 청승 떨지말구 어서 갑시다.

작년에도 안오던 자식놈들이 금년이라구 오겠수? "

​​

어머님이 손을 잡고 이끌자,

그제서야 아버님은 못이기는척 일어 났지요.

" 오늘 날씨 왜 이리 좋은기여? 어서 가서 아침먹고 고추모나 심읍시다 "

" ..... "

​아버님은

아무 말없이 따라 오면서도 자꾸 동네어귀만 처다 보셨지요.

" 없는 자식복이 어디서 갑자기 생긴다우? 그냥 없는듯 잊고 삽시다 "

" 험험 ... "

헛기침을 하며 따라오는 아버님이 애처로워 보였지요. 집에 돌아와 아들오면 잡아주려고 애지중지 길러왔던 씨암탉을 보고..

​​

"오늘은 어버이 날이니 우리 둘이 씨암탉이나 잡아 먹읍시다. 까짓거 아끼면 무얼하겠수? 자식 복두 없는데.. "

​" ...... ",

아침 밥상을 차리면서

" 오늘은 고추모고 뭐고 그냥 하루 편히 쉽시다. 괜히 마음도 안 좋은데 억지로 일하다 병나면 큰일 아니우?

​​

다른 집들은

아들 딸들이 와서 좋은 음식점에 외식이다 뭐다 하는데.. 우린 씨암닭 잡아 술이나 한잔 합시다 "

" 험험 ... ", 그때였어요.

아침상을 마주하고 한술 뜨려 하는데,

" 아브이 어므이~ " 하면서 재너머 막내 딸과 사위가 들이 닥쳤지요.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심하게 저는 딸이라 늘 구박만 주었던 딸인데, 사위랑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헐레벌떡 들어 왔어요.

​​

깜짝 놀라며~!

" 아니 니가 어떻게.. 제 몸 하나 잘 가누지 못하는 니가 어떻게 왔니? "

" 어므이 아브이 !!

오늘 어브이날 이라 왔어. 아브이 좋아하는 쑥 버므리떡 해가지고 왔어. "

​그러면서

아직 따끈따끈한 쑥 버므리떡을 내 놓는 것이 아닌가~.

" 아니 이 아침에 어떻게 이 떡을 만들었니? "

" 저이하고 나하구 오늘 새벽부터 만들었어 맛이 있을런지 몰라 히히 "

" 이보게! 박서방 !! 어떻게 된건가? "

​​

"  ! 장모님 저사람이 어제부터 난리를 첬어요.

장인 어른께서 쑥버므리떡 좋아하신다고 쑥 뜯으러 가자고 난리를 치고, 또 밤새 울거내고 새벽부터 만들었어요. "

" 그랬구나 !

그런데 왜 이렇게 땀을 흘리고 왔어? 천천히 오지? "

" 저 사람이 쑥 버므리떡은 따끈할 때 먹어야 맛있다고 식기전에 아버님께 드려야 한다고 뛰다시피해서 가지고 왔어유~ "

​​

" 에이구 몸도 성치않은 자식인데.. "

소아마비로 인해 딸이 몸이 성치 않아 몇 년전 한쪽 다리가 불구인 사위를 얻어 시집을 보냈던 딸이었지요.

​​

언제나 어머니 마음 한구석에 아픔으로 자리했던 딸이었기에 그저 두내외 잘 살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지요.

​​

어느 사이 어머님의 눈가엔 눈물이 배어 나왔어요.

" ! 아브이 어므이 이거!! " 하면서 카네이션 두송이를 꺼내어 내미는 거였지요.

" 저이가 어제 장터에 가서 사왔어! 이쁘지? 히히 "

" 내가 달아 드릴께 !! " 하면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주었지요.

" 아브이 어므이 오래오래 살아야돼 !! 알았지? 히히 "

" 그래 알았다 오래 살으마 !! 너희들도 행복하게 잘 살아라 !! 박서방 정말 고맙네 !! "

" 아니에요 장모님 !! 두 분 정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유 "

" 그려 그려 정말 고맙네 !! "

" 아브이 어므이 어서 이 쑥떡 먹어봐 !! 맛이 어떨런지 몰라 히히 "

" 그래 알았다 "

아버님과 어머님은 쑥 버므리떡을 입에 넣으며 목젖이 울컥하는 것을 느꼈지요.

​​

눈가엔 눈시울이 붉어 졌지만 애써 참으며.. "

그래 참 맛있구나 !!

​이렇게 맛있는 쑥떡은 처음 먹어 보는구나~ 당신도 그렇지요? "

" 흠흠 으응.. "

아버님은 목이 메어 더이 상 말을 하지 못하셨지요.

​​

"  !! 술 술.. "

사위가 잊었다는듯 보따리에서 술병을 꺼냈어요.

" 이거 아브이 어므이 드린다구 박서방이 산에서 캔 산삼주야. 작년에 산에 갔다 캤는데, 팔자구 해두 장인어른 드린다고 안 팔구 술 담은거야 "

​​

" 박서방이 산삼을 캤구먼 "

" ! 작년에 매봉산에서 한뿌리 캤시유 "

" 에구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

산삼주를 받아든 아버님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지요.

​​

" 평생 홀아비로 늙어갈 몸인데, 저렇게 이쁜 색시를 주셔서 넘 고마워유 "

" 무슨 소린가? 몸도 성치않는 자식을 받아 준 자네가 고맙지!! "

" 아녀유? 저한테는 너무 과분한 색시구먼유 "

" 그려 그려 앞으로도 못난 자식 잘 부탁하네 !! "

" 장인장모 어르신 오래오래 사세유~ "

아버님은 눈시울이 뜨거워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슬며시 일어나 나가셨지요.

​​

병신 자식이라 불쌍하게만 여겼지, 아들처럼 공부도 안 시키고 결혼식도 안 올리고, 그냥 시집을 보낸 딸 자식이었는데..

​그저 시집보냈으니 있는듯 없는듯 신경 안쓰던 그 자식이 어버이 날이라고 이렇게 불쑥 찾아 올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지요.

​​

더욱이 내가 좋아하는 쑥 버므리떡을 밤을 새워가며 해가지고 올 줄이야..

​​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떡을 먹어 본적이 있었던가?

무엇이든 아들 형제만 주려고 생각했지, 병신 딸은 언제나 안중에 없었지요.

​​

행여 병신 자식이라고

업신 여겼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어요..

불구의 몸이지만, 딸의 마음이 저렇게 깊은 줄 이제서야 알았지요.

​​

아들들 때문에 서운했던 마음이 딸로 인해 풀어졌어요.

먼 아들보다 가까운 딸 자식이 소중한 것을 그때서야 알았어요.

그러면서 가슴 저 깊은 곳이 아려 왔지요.

정말 딸자식이 고마웠어요.

아니 많이 미안했지요.

​​

한참 뒤 밖에서 씨 암닭 잡는 소리가 들렸어요. 잘난 자식들 줄려고 키웠는데, 못난(?) 딸자식 줄려고 잡나봐요.

" 우리 귀한 사위 줄려고 장인어른이 씨 암닭 잡나보네 "

" 어이구 황송해서 어쩌지요? 장모님? "

" 아닐세 자네는 씨암닭 먹을 자격 충분하네 !! "

" 장모님 고마워유 "

​​

✔옛말에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했던가요?

몸도 성치 않은 딸자식이 진정한 효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네요..

[출처]어버이 마음|작성자 최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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