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처럼 눈이 많이 왔던 해는 드물었던 같다. 눈이 오면 제일 반기는 곳은 바로 스키장이다. 인공 눈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폭설이 내리면 통행하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눈으로 인한 교통 혼잡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교통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새벽길을 걷는 나에게는 이 눈이 불편한 존재이다. 눈이 오면 큰 도로에는 재빨리 재설 작업이 이루어지지만 산책로는 손이 뻗치지 못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통행을 하기 때문에 오솔길 같은 통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 눈길을 걸을 때마다 시인 권오삼의 ‘결투’라는 동시가 자꾸 떠오른다. 인도 한 가운데로 사람 하나 다닐 만큼 좁다랗게 뚫린 눈길에서 할아버지와 청년이 마주치는데 할아버지가 옆으로 비켜선다. 그 할아버니가 또 아줌마를 만나 안 되겠던지 얼른 옆으로 비켜선다는 내용의 동시이다. 어쩌면 내 마음을 대신 표현하는 것 같아 그 시인이 존경스럽다. 두 번이나 결투에서 진 할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 한 편의 동시가 요즘 세태를 꼭 집어 주어 대변하는 것 같았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다르다. 이기주의는 남이 없고 오직 나뿐인 사고이다. 내가 더 많이 갖고 내가 먼저 가고 내가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개인주의는 남을 배려하는 사고이다.
초등학생에게 장차 어떤 사람이 될거냐고 물으면 대부분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냐고 물으면 말을 못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훌륭한 사람이란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슈바이처 박사는 박사 학위만도 여러 개이고 본국에 있으면 부와 명예를 다 누릴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팽개치고 아프리카 흑인들을 치료해 주러 떠났지 않았던가? 우리 나라 고 이태석 신부를 보면 수단에서 병을 치료해 주는 일은 물론 그네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어 지금까지도 그를 흠모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분들이야 말고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좁다랗게 뚫린 눈길을 걷다보면 두 사람이 마주칠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 좁은 길에서도 우측 통행 규칙을 지키면 되겠지만 여기에는 규칙이 없다. 마음 약한 사람이 비껴 서야 한다. 두 번의 결투에서 진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나는 반대쪽에서 사람이 오면 그 할아버지가 되어 내가 먼저 비껴서 간다. 그것이 속이 편하다. 대충 따져보면 10명 중 8명은 양보하지 않고 가던 길을 그대로 간다. 이 조그만 공간에서도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