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일의 자랑스런 한글
대답을 못하고 어물거리는 승빈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던 렌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니까, 보석을 가진 사람은 보석 귀한 걸 모르고 남의 손에 끼워 있는 은가락지만 부러워한다니까, 호호호호.”
그래도 대답을 못하는 승빈을 보시던 렌의 엄마가 물었습니다.
“그게 뭐냐?”
“한글이에요, 글자.”
렌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셨습니다.
“한글?”
승빈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만들었다는 거북선은 굉장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아닌 한글이 그렇게 중요한 줄은 몰랐습니다. 렌이 예쁜 눈빛으로 승빈이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지구에는 다섯 종류 내지 열다섯 종류의 사람이 산다고 해요. 그 인종을 말의 종류대로 나누면 86종 내지 130종류의 말이 있다고 해요. 그 가운데 글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50개국이 채 안 된다는 거예요.”
렌의 엄마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네가 그런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누구한테 배웠어?”
“가르쳐주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책에서 보았지요. 책은 바로 선생님이잖아요.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은 선생님을 모시고 다니는 거라고 생각해요.”
승빈이도 놀랐습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하더니…….’
렌이 말을 계속했습니다.
“세계 문화의 발생지는 나일강, 유프라테스강, 황하라고 알려졌지요. 그런데 글자의 발명을 보면 나일강 유역 이집트는 그림글자를 만들어 썼고, 유프라테스강 유역은 바빌로니아의 쐐기글자, 황하 유역 중국은 한자를 만들어 쓰고 있지만 한강 유역의 한국에서는 한글을 만들어 쓰고 있어요. 그 가운데 어떤 나라 글씨가 가장 훌륭한지 아시나요? 엄마, 그리고 빈?”
엄마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린 채 대답을 못했습니다. 승빈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어에 대하여는 왜 말하지 않는 것일까 궁금해졌습니다.
“다른 나라 말은 다 설명하면서 영어는 왜 빼놓았어?”
“영어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빈?”
엄마도 말했습니다.
“그래, 가장 중요한 영어는 빠뜨렸어.”
렌이 반문했습니다.
“영어에 쓰이는 글자가 어느 나라 글씨인 줄 알아, 빈?”
승빈이 대답하지 못하자 엄마가 대신 말했습니다.
“영어는 영국에서 만든 글자가 아니냐?”
“호호호호, 엄마 그런 말 아무데서도 하지 말아요. 영어의 글자를 뭐라고 하지요?”
승빈이 대답했습니다.
“알파벳이라고 하지 않나……?”
“알파벳이 무슨 뜻인가 아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엄마도 승빈이도 대답을 못하고 서로 바라만 보았습니다.
“두 분 학생, 잘 들으세요, 호호호. 아이, 재미있어.”
‘알파벳이란 영어문자라는 말이 아닐까?’
승빈이 이렇게 생각하는데 렌이 설명했습니다.
“영어 글자가 만들어지기까지를 설명하면 지루할 것 같아 간단히 설명해 드리겠어요. 영어 알파벳을 처음 만든 나라는 페니키아였는데 그 사람들은 이집트의 시늉글자를 소리글자로 바꾸어 놓은 것이고 26자 가운데 앞 첫 글자 ‘에이’를 ‘알레프’라고 읽었고 두 번째 ‘비’를 베에트라고 부르기 시작하여 알파벳이 된 거예요.”
엄마는 놀라서 눈이 커졌습니다.
“네가 언제 그런 것까지 배웠니?”
“배운 게 아니고 읽은 거예요. 책이 선생님이라니까요, 호호호.”
“페니키아가 어떤 나라냐?”
“그 나라는 레바논 산과 지중해 사이에서 상업이 발달한 국가였대요. 지중해 연안의 상업 중심 국가로 여러 나라와 거래를 하자니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대요. 그래서 이집트의 시늉글자를 끌어들여 상업용 거래 문서로 쓰다가 문자를 변형시켜 소리글자로 만들었고 그것을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다 보니 지금과 같이 알파벳이 세계 공통문자가 되었다고 해요. 그러나 같은 글자를 나라마다 다르게 읽지요. 문자 ‘에이’자를 그리스에서는 알파, 영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독일, 러시아, 몽고에선 ‘아’로 읽어요.”
“어머! 네가 언어학자가 다 되었구나!”
“그러나 알파벳을 쓰지 않는 나라가 있어요, 일본이나 중국은 자기들 나라 글자를 만들어 쓰지만 우수한 특수성은 한글을 따르지 못해요.”
“한글이 그렇게 잘 된 글자라는 거냐?”
“한글이 얼마나 훌륭한 글자인지 알아? 빈?”
렌의 눈에는 장난기가 예쁘게 빛났습니다. 한글을 어떻게 말해야 훌륭한 글자라고 설명할지 몰라 승빈은 주저했습니다. 눈치를 챈 렌이 진달래꽃 입술로 설명했습니다.
“지금까지 세계 글자올림픽이 세 번 있었대요. 그런데 2012년에 열린 태국에서의 올림픽을 끝으로 이 행사는 더 이상 안 하기로 되었답니다.”
엄마가 물었습니다.
“별 올림픽이 다 있구나. 난 들어보지도 못한 소린데 넌 어디서 그런 것도 알았니?”
“그건요, 우리 학교에 동화 작가라는 할아버지가 오셔서 가르쳐주신 거예요.”
“동화작가가?”
“네, 그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오셔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글자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 하고 물었는데 모두가 ‘영어요’ 하고 대답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아주 부러워해요. 그러니 아이들도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지요.”
엄마가 물었습니다.
“우리나라라면?”
“우리 프랑스 사람들은 나랏말 사랑이 세계 최고예요. 우리나라에 온 외국 사람이 영어로 무엇을 물으면 알아들으면서도 대답을 하지 않잖아요. 우리말로 물어야 대답하게 하는 나랏말 사랑 정신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국은 자기 나라 말이 있고 세계적으로 우수한 글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의 나라 말을 더 좋은 것으로 생각해요. 자기 나랏말 사랑이 바로 애국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어요.”
“그렇구나. 네가 바로 애국자야.”
엄마의 말씀에 승빈이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렌은 정말 똑똑하고 귀여운 아이입니다. 렌이 물었습니다.
“세계 글자 올림픽에서 한글이 몇 등 했는지 알아? 빈?”
승빈은 처음 들어보는 소리라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
엄마도 궁금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엄마도 모르시는 것 같네요?”
“문자올림픽이라는 게 있었단 말이냐?”
“세 번을 했는데 세 번 다 한글이 1등을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3회째에 앞으로 이 올림픽은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는 거예요.”
“왜 중단했을까?”
“그 동화작가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세계 각 나라마다 고유한 글자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변하자면 수천 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래요. 지금 알파벳을 쓰는 나라가 언제 다른 나라 글자를 쓰겠어요. 글자는 몇 년 만에 쉽게 만들고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백 년이 가도 한글의 우수성을 앞지를 글자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지요.”
엄마가 어이없어 했습니다.
“네가 낮잠만 자가다 온 줄 알았는데 엄마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구나.”
“엄마는 한국어를 제대로 모르지 않아요? 나는 한국어라면 프랑스어보다 더 잘할 수 있고 무슨 책이든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동화작가 할아버지의 강의를 나만 들었으니까요, 호호호호.”
승빈은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하나 더 말씀하신 것이 있어요. 세계 모든 나라 글자는 어느 시대에 누가 만들었다는 근거가 없이 수백 년 동안 필요에 따라 사용하다 자기들 나라 글자가 된 것이지만 한글은 서기 1420년도에 세종대왕이라는 임금님이 집현전이라는 학문연구소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고 그 당시 만들어 놓은 닿소리와 홀소리가 매우 과학적이라는 거예요. 영어의 알파벳은 같은 글자를 가지고 여러 가지로 읽기 때문에 불편하고 중국 한자는 뜻글자라 복잡하고 일본 글자는 소리 나는 대로를 적을 수 없어서 완전하지 않지만 한글은 무슨 소리든지 글자로 쓸 수 있어서 우수성을 인정하는 거예요. 그런데 한글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어요.”
“무슨 문제가?”
“주시경이라는 한글학자가 세종대왕이 만들어 놓은 글자 가운데 네 개를 없애 버린 거라는데 그것이 없어져서 영어의 브이, 에프, 티에치 발음 등을 글자로 쓰지 못하고 제 소리도 낼 수 없어서 많은 불편이 있대요. 그래서 ‘마라톤’ 하는가 하면 ‘마라손’ 하고 적어서 혼란스럽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통일했다지만 완전한 소리를 적지 못한다고 그 없어진 글자에 대하여 많이 애석해 하셨어요.”
승빈은 귀가 번쩍 띄었지만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그런 것을 가르쳐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지루하신 듯 이야기를 바꾸었습니다.
“네 이야기가 재미있긴 한데 지루하다. 이제 다음 이야기는 빈이가 할 수 있도록 하면 안 되겠니?”
렌이 밝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엄마, 내 강의가 그렇게 지루했어? 그럼 다음 시간은 빈한테 양보할게요.”
승빈은 어리둥절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고 있는데 렌이 말거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빈도 외국에서 나처럼 외로웠을 거야. 그래서 책하고밖에 친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거 아니야. 동화든 뭐든 읽은 이야기를 하면 될 거 같은데.”
그렇습니다. 네덜란드에서 몇 년 동안 지내면서 친구도 사귀지 못했고 학교에 가면 영어만 쓰는데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여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책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고 책은 무슨 내용이든지 다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승빈은 렌 엄마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아직 영어도 서툴고 프랑스 말은 한 마디도 모릅니다. 한국말을 알아들으시니 우리나라말로 하겠습니다. 괜찮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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